청목공동체

껍데기에 속지 마라

[포장지를 벗겨낸 진실의 얼굴] 사순절 넷째 주일, 우리는 스스로에게 서늘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습니까?" 화려한 포장지 속에 숨어 가식적인 삶을 연기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실은 그 포장지조차 가질 형편이 못 되면서 말입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자랑은 곧 자신을 실제보다 부풀리는 행위입니다. 풍선처럼 아무리 나를 부풀려도, 시간이 흐르면 우리의 실체는 결국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진실은 요란하게 자신을 증명하려 들지 않습니다. 특히 사람의 마음을 사야 하는 선거철이 되면 포장지는 더욱 화려해집니다. 유권자의 '머슴'이 되겠다는 감언이설과 참기름처럼 매끄러운 설교들이 사방에 진동합니다. 하지만 화려한 예배당이나 유려한 언변에 속지 마십시오. 겉모습에 현혹되지 않는 지혜는 내면의 가식을 먼저 걷어낼 때 시작됩니다. 이제 잠잠히 하나님께 물어야 할 때입니다. 누가 진실한 사람인지, 그리고 나는 어떻게 진실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말입니다. 사순절은 비우는 절기입니다. 나를 돋보이게 했던 거짓된 장식들을 내려놓고 정직한 민낯으로 서는 시간입니다. 포장지를 과감히 뜯어낼 때, 비로소 그 속에 감춰진 '진실'이라는 진짜 선물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https://youtu.be/8u2KTZWRQXc
7 months ago
청목공동체

비난의 시대에 던지는 질문

비난의 시대에 던지는 질문 다시 선거의 계절이 돌아왔다. 휴대전화는 쉴 새 없이 울려대고, 그 속에는 타인을 향한 날 선 공격과 자신을 향한 과도한 미화가 뒤섞인 메시지들이 가득하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메시지를 두고도 지지 여부에 따라 반응이 극명하게 갈린다는 것이다. 내가 지지하는 이의 허물은 ‘그럴 수 있는 일’이 되고, 상대의 작은 실수는 ‘용서할 수 없는 죄’가 된다. 비단 정치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100만, 200만 구독자를 거느린 유튜버들은 타인의 과거를 파내어 ‘검증’이라는 이름의 심판대에 올리고, 대중은 그 위에서 소위 ‘멍석말이’라 불리는 집단적 저주를 퍼붓는다. 이 거대한 비난의 소용돌이 속에서 문득 자문하게 된다. 과연 우리 중 과거의 행적과 언행으로부터 자유로운 이가 단 한 명이라도 있을까? 타인에게 돌을 던지는 이들 또한 한때는 ‘올챙이’였음을 망각한 채, 자신들의 어두운 과거는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용서와 회개, 사과라는 단어는 어느덧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버렸고, 세상은 오직 ‘죽여야 사는’ 저주의 언어로 가득 차 있다. 이 삭막한 풍경 위로 성경 여호수아 8장의 한 장면을 겹쳐 본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이 성 점령이라는 승리를 거둔 직후의 일이다. 보통의 지도자라면 기세를 몰아 다음 전쟁을 준비했겠지만, 여호수아는 멈춰 섰다. 그리고 에발 산에 제단을 쌓았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제단을 쌓은 장소다. 성경에서 축복을 상징하는 산은 ‘그리심’이고, 저주를 상징하는 산은 ‘에발’이다. 상식대로라면 당연히 축복의 산인 그리심에 제단을 쌓아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주의 산인 에발에 단을 쌓으라고 명하신다. 이것은 놀라운 역설이다. 저주가 선포되는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제사를 통해 용서와 회복의 길을 열어주셨다. 즉, 인간의 저주가 끝나는 지점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시작된다는 선언이다. 에발 산의 제단은 훗날 저주의 상징이었던 나무 틀 위에서 온 인류를 구원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닮아 있다. 우리가 죄의 저주 아래 갇혀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는 대신 그 저주의 한복판으로 찾아오셨다. 여호수아는 그 제단을 쌓을 때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사용했다. 이는 인간의 기술이나 공로, 혹은 화려한 정치적 수사(修辭)가 아니라 오직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함을 의미한다. 또한 그는 그 돌 위에 율법을 새겼다. 바람에 날리는 흙이나 썩어 없어질 나무가 아니라,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돌에 기준을 새긴 것이다. 상황과 이익에 따라 고무줄처럼 변하는 세상의 잣대가 아니라, 변치 않는 절대적 가치를 삶의 기준으로 삼으라는 준엄한 가르침이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유튜브와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세상이 바뀌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 십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하는 화려한 언설은 많지만, 그 말씀을 자신의 마음에 ‘각인’하는 이들이 적기 때문일 것이다. 남을 정죄하는 도구로 말씀을 사용하는 이는 많으나, 자신을 비추는 거울로 삼는 이는 드물다. 결국 축복과 저주는 감정이나 운명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남을 저주하며 사는 인생에 복이 깃들 자리는 없다. 타인을 향해 쏟아낸 저주는 부메랑이 되어 반드시 자신에게 돌아온다. 반면, 저주 받아 마땅한 자리에서도 축복의 언어를 선택하는 이들은 세상을 살리는 통로가 된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타인의 과거를 파내는 삽이 아니라, 저주의 산 위에 회복의 제단을 쌓는 용기다. 비난의 돌을 던지기 전, 내가 서 있는 곳이 에발 산임을 자각하고 그곳에 은혜의 제단을 쌓아야 한다.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그러면 너희가 살리라”는 오래된 외침은, 혐오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유일한 생명줄이다.
7 months ago
하나님을 만나는 곳, 성현벧엘교회 입니다.

[2026.03.27(금) 성현벧엘교회 새벽 말씀 배달] 💌

본문: 마태복음 26장 26~35절 찬송: 313장 (내 임금 예수 내 주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보혈의 은혜로 거룩을 덧입는 은혜로운 금요일 아침입니다! 🌱 나를 부르신 주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넉넉히 승리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1. "십자가 언약(디아데케)의 피를 의지하십시오" 🍷 우리가 거룩한 자녀로 부름받은(소명) 것은 내 노력이 아닙니다. 자격 없는 나를 위해 생명 주신 주님의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언약의 보혈 위에 내 영혼과 가정을 세울 때 참된 거룩이 임합니다. 2. "결단만으로는 실족함(스칸달리조)을 이길 수 없습니다" 🚶‍♂️ 내 결단과 의지만으로는 위기를 이길 수 없습니다. 언제든 넘어질 수밖에 없는 나의 연약함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매 순간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겸손한 자만이 거룩을 지켜냅니다. 🙏 오늘 나를 위한 기도 "사랑의 주님, 나의 결단과 의지만으로 거룩하게 살 수 있다고 착각했던 교만을 회개합니다. 💖 오늘 조건부 사랑을 버리고, 오직 나를 부르신 십자가 언약의 피만을 의지하여 우리 가정의 거룩을 온전히 세워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오늘도 보혈의 은혜 안에서 성령 충만한 하루 보내세요!!!^^ 성현벧엘교회 양희원 목사 드림 ⛪️
7 months ago
하나님을 만나는 곳, 성현벧엘교회 입니다.

[2026.03.26(목) 성현벧엘교회 새벽 말씀 배달] 💌

본문: 마태복음 26장 14~25절 찬송: 290장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거룩을 결단하며 깨어 기도하는 목요일 아침입니다! 🌱 세상의 탐욕을 버리고 오직 주님을 온전한 주인으로 모시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1. "탐욕으로 주님을 넘겨주지(파라디도미) 마십시오" 💰 눈앞의 알량한 이익과 세상의 성공을 위해 신앙의 양심을 저버리지 마십시오. 가족을 조건으로 평가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얄팍한 계산과 탐욕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 참된 거룩을 지킬 수 있습니다. 2. "예수님을 진정한 주인(퀴리오스)으로 모시십시오" 👑 적당히 거리를 두며 겉모습만 거룩한 척하는 가식적인 신앙을 버리십시오. 예수님을 단순한 조언자가 아니라, 내 삶을 송두리째 다스리시는 절대적인 주권자로 모실 때 온전한 거룩이 시작됩니다. 🙏 오늘 나를 위한 기도 "사랑의 주님, 세상의 이익 때문에 주님과 가족을 저울질했던 나의 악한 탐욕을 회개합니다. 💖 오늘 신앙의 가식을 벗어버리고 예수님을 내 삶의 유일한 주인(퀴리오스)으로 모셔, 온전한 거룩을 살아내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오늘도 가식을 버린 진실한 믿음으로 승리하는 하루 보내세요!!!^^ 성현벧엘교회 양희원 목사 드림 ⛪️
7 months ago
More Feed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