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만나는 곳, 성현벧엘교회 입니다.

🌾 함께 흘려보내는 사랑, 2026 성현벧엘교회 농어촌교회 섬김의 날 (진주외율교회)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는 9월,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결에 하나님의 따뜻한 위로가 느껴지는 계절입니다. 안녕하세요. 성현동 주민 여러분과 성도님들의 영적 가족, 성현벧엘교회입니다. 오늘 여러분께 아주 특별하고 가슴 벅찬 동행을 제안하고자 이 글을 씁니다. 한국 교회의 뿌리이자 영적 고향인 농어촌 교회들은 현재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농어촌 교회의 목회자분들과 성도님들의 눈물 어린 기도가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의 신앙이 든든히 서 있을 수 있었습니다. 이에 우리 성현벧엘교회는 그 빚진 마음을 조금이나마 갚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고자 <2026년 농어촌교회 섬김의 날> 사역을 진행합니다. 사실 지난 여름 이번 9월 추석 명절을 앞두고, 본 교회에서 후원하고 있는 농어촌 교회 목회자를 초청하여 함께 식사하고 교제 나누며 큰 위로를 전하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주일 예배를 비울 수가 없어 부득이 초청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양희원 후임목사님께서 여러 곳을 알아보시던 중, 진주외율교회 목사님과 연락이 닿아, 때마침 목사님께서 출타를 하셔야 하는 일이 생겨, 그 교회를 섬기러 가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라고 하지 말고, 가서 섬겨야 함 을 다시 한번 우리 교회에 일깨워 주셨습니다. 올해 우리가 마음을 나누고 동역할 곳은 경남 진주에 위치한 '진주외율교회(염충현 목사님 시무)'입니다. 성현벧엘교회를 대표하여 양희원 목사님께서 진주로 내려가 교회의 성도들을 격려하고, 따뜻한 사랑을 나누며, 함께 예배하고 은혜받는 귀한 시간이 될 예정입니다. 이 귀한 여정에 여러분의 사랑을 더해주세요. 농어촌 교회를 향한 섬김은 몇몇 사람만의 몫이 아닙니다. 비록 멀리 진주까지 직접 가지 못하시더라도, 여러분이 보내주시는 따뜻한 마음과 기도는 진주외율교회 성도님들에게 벅찬 감동과 큰 격려로 전해질 것입니다. 여러분이 정성껏 모아주시는 특별 헌금과 물품은 진주외율교회 성도님들과 풍성한 교제를 나누고, 그곳의 복음 사역을 든든히 세워가는 귀한 일에 온전히 사용될 것입니다. 기도로 동역해 주시고 마음을 나누어 주신다면, 두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름답게 연합하며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은혜로운 열매를 맺게 될 줄 믿습니다. 보내주시는 사랑, 성현벧엘교회가 정성을 다해 온전히 안고 달려가 진주외율교회에 전하겠습니다. [2026년 성현벧엘교회 농어촌교회 섬김의 날 사역 안내] 일시: 2026년 9월 9일(수) ~ 13일(주일) 장소: 진주외율교회 (염충현 목사 시무) 말씀 사역: 양희원 후임목사 (수요 저녁, 주일 오전, 오후 설교) 동참하는 방법: 농어촌교회에 따뜻한 사랑을 전하기 위해 기도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함께 동역하고자 하시는 분들은 아래 계좌로 헌금해 주시거나, 교회로 물품을 전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후원 계좌: 농협 355-0094-8159-43 (예금주: 성현벧엘교회)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 갈라디아서 6장 2절 여러분의 따뜻한 기도와 동참을 기다립니다. 감사합니다.
2 days ago
충주빛의숲교회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옳습니다

[260906 충주빛의숲교회 주일설교 요약]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옳습니다(삼상20:1-42) 유튜브 설교 https://youtu.be/7rDbWj2GdUk 다윗은 사울 왕의 위협을 피해 라마 나욧으로 갔지만, 사울이 그곳까지 찾아오자 다시 그곳을 떠납니다. 그리고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는 것이 일시적인 감정인지, 아니면 확고한 의도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요나단을 찾아갑니다.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의 마음을 알아보기로 하고, 화살을 이용해 그 결과를 다윗에게 알려주기로 합니다. 사울에게 다윗을 죽일 의사가 없다면 돌아와도 된다는 뜻으로, 그렇지 않다면 도망가야 한다는 뜻으로 신호를 보내기로 한 것입니다. 결국 이 일을 계기로 다윗의 본격적인 도피생활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람이 요나단입니다. 요나단은 다윗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친구였지만, 자신의 아버지와 왕권까지 뒤로하고 다윗의 생명을 지켜주었습니다. 요나단이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이유를 본문을 통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은 위기의 순간에도 다윗을 홀로 두지 않으셨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상황을 가리켜 “나와 죽음의 사이는 한 걸음뿐이니라”고 말합니다(3절). 그러나 죽음이 한 걸음 앞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다윗을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요나단이라는 사람을 붙여주셨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요나단이 사울 왕의 아들이며 왕위를 이어받을 왕자였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다윗과 가장 가까워져서는 안 될 사람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를 다윗의 가장 가까운 친구로 사용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지 모르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 구하기도 전에 아시고, 가장 필요한 때에 필요한 사람과 방법으로 우리를 도우시는 분입니다. 우리에게 요나단과 같은 친구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감사한 일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런 사람이 없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나를 돌보고 계심을 믿는 것입니다. 다윗에게 요나단을 보내주신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가장 귀한 친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친구라 부르셨고(요15:15),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셨으며, 우리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으십니다(히13:5). 그러므로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홀로 버려진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예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2. 요나단은 우정을 넘어 하나님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였습니다. 사울은 요나단에게 “이새의 아들이 땅에 사는 동안은 너와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고 말합니다(31절). 인간적으로 보면 사울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된다면 요나단은 왕위를 계승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나단 역시 이 사실을 몰랐을 리 없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을 사랑하고 그의 생명을 지켜준 것은 단순히 친구에 대한 우정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시려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에게 훗날 왕이 되었을 때 자신의 집을 잊지 말아 달라고 부탁합니다(14-15절). 이것은 요나단이 다윗의 미래를 인정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요나단은 자신의 왕위를 다윗에게 양보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미래를 하나님께 맡긴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신다면 그것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내 인생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해도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겠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이 충돌하고, 내가 손해를 보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까지 보시며 우리의 미래까지 알고 계십니다. 요나단이 하나님의 뜻을 모두 이해했기 때문에 받아들인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알지 못했지만, 다윗을 세우시는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에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이 같을 때 하나님을 믿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이 충돌할 때에도 하나님이 옳다고 믿는 것,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3.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옳다고 믿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요나단이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였다고 해서 그의 인생이 편안하고 순탄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결국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요나단과 다윗이 맺은 언약을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다윗이 왕이 된 후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찾아 왕의 식탁에 앉게 한 것이 그 증거입니다(삼하9장). 요나단이 선택한 길은 당장 자신에게 유리한 길은 아니었지만, 그는 자신의 미래를 하나님의 손에 맡겼습니다. 요나단은 하나님을 사이에 두고 다윗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을 경쟁자로만 보지 않았고, 자신을 반드시 왕이 되어야 하는 사람으로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욕망에 눈이 멀지 않고 하나님의 눈으로 자신과 다윗을 바라본 것입니다. 이것이 요나단의 지혜였습니다. 자기에게 유리한 길을 선택하는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자신의 미래를 맡기는 지혜였습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사55:8-9). 우리가 하나님의 생각과 길을 모두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우리는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질문에 언제나 명쾌한 답을 얻어야만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롬8:28).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옳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선하시며,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선하신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내가 원했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내가 생각했던 길과 다른 길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때 이렇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저는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옳습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해도 하나님을 신뢰하겠습니다. 내 인생의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겠습니다.”
3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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