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교회

독생자를 주셨으니

설교일 : 2021.12.12.주일 성 경 : 요3:16-21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만 했으며, 하나님께서는 왜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을까요? 첫째, 세상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내어 주시기까지 세상을 사랑하십니다. ‘세상’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떠난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처음 사람 아담의 범죄 이후로 모든 사람은 죄 가운데 빠졌습니다. 롬3:23에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했습니다. 사64:6에는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라고 했습니다. 죄에 빠진 인간은 선행이나, 철학이나, 고행 혹은 종교 등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도달하려고 해 보지만 불가능합니다. 창6:5에는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라고 했으며, 창8:21에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욕심의 지배를 받고 삽니다. 약1:15에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아름답게 지으셨지만 인간은 꾀를 내었고, 사단의 미혹을 받아 죄에 빠져 영원한 지옥 형벌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죄에 빠진 인간은 스스로를 결코 구원할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는 죄 없으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그에게 세상의 죄를 담당하게 하셨습니다. 여기에 놀라우신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요일4:9-10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했습니다. 롬5:8에도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십시오. 이미 정죄 받은 모든 인간에게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의 사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를 영접하며 그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바울은 갈3:20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우리도 이런 고백과 함께 남은 생애를 사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16절에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고, 17절에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인간들은 죄로 인해 이미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습니다. 그 정죄는 영원한 지옥의 형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사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 세상 사람들의 죄값을 대신 치르게 하셨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심판에서 구원받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를 믿는 자마다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16절에 “그를 믿는 자마다”라고 했고, 18절에도 “그를 믿는 자는”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대신 형벌을 받으셨지만 그 효력 즉 심판에서 구원을 받는 자는 오직 ‘그를 믿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를 믿지 않는 자는 여전히 심판 아래 있는 것입니다. 18절에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를 구원의 자리로 초청하시고 부르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인정하고 회개하며 예수님을 죄로부터 나를 구원해 주실 구주로 믿고 영접하면 누구든지 심판에서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의 하나님께서 예비해 주신 유일한 구원의 길이요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입니다. 행4:12에는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했고, 마1:21에는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죄를 사함 받지 못한 죄인은 사후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못인 지옥의 형벌을 피할 수가 없지만, 예수님을 믿고 죄사함을 받은 의인은 천국에서 영원을 누리게 된다고 성경은 분명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할렐루야! 아멘.
6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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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을 얻으려면

설교일 : 2021.12.5.주일 성 경 : 요3:1-15 어느 날 밤에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는 바리새인이요 관원이요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유대인의 지도자입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에게서 나타나는 표적은 하나님이 함께하심이라고 하면서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안다고 말합니다. 그가 무엇 때문에 왔는지 그의 마음을 이미 알고 계시는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니고데모는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늙었는데 다시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시면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하십니다. 거듭나는 것은 육이 아닌 영적 출생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그 소리는 들리는 것처럼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다‘고도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자신은 하늘에서 내려 온 자라고 말씀하시면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예수님)도 들려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것은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도 하십니다. 이제 말씀을 통해 영생 얻는 길, 하나님 나라(천국) 에 들어가는 길을 상고하며 은혜 받으시겠습니다. 첫째, 영생을 얻으려면 거듭나야 합니다 3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셨는데, 볼 수 없다는 말은 들어갈 수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거듭난다’는 말은 다시 태어난다는 뜻입니다. 그래야 천국에 들어가고 영생을 얻는다는 말이지요. 엡2:1에 보면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했습니다. 죄 때문에 완전히 죽어 있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 완전히 끊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모든 사람의 영혼은 죽어 있습니다. 영혼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통이 완전히 끊어진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거듭남은 영적인 출생이라고 말씀하십니다(6절) 죄가 없던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항상 교통하며 살았습니다. 에덴동산에 죄가 들어오므로 하나님과 단절되었는데 이것이 영적인 죽음의 상태인 것입니다. 이후로 모든 사람은 영혼이 죽은 상태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 수도 찾을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영적인 출생이 있어야 합니다. 육신은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오지만 영적인 출생은 위로부터,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요1:13절에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둘째, 어떻게 거듭날 수 있습니까 5절에 보면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물’은 씻어내는 일을 합니다. 죄인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죄 씻음을 받아야만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죄인들의 모든 죄를 씻는 능력이 됩니다. 히9:22에 “율법에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하셨고 히9:12에는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물’은 속죄의 피를 의미합니다. 또한 ‘물’은 성경 여러 곳에서 ‘말씀’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가 죄를 씻는 속죄의 보혈임을 믿을 수 있습니다. 다음에 ‘성령’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성령께서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속죄와 구원의 믿음을 우리 안에 넣어주셔서 거듭나게 하십니다. 거듭나게 하시는 역사는 성령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육신의 몸은 모태에서 나오지만 영혼의 거듭남은 성령으로 되어지는 역사입니다. 셋째, 거듭난 증거는 무엇입니까 영혼은 보이지 않습니다. 내가 실제로 거듭났는지, 언제 거듭났는지 잘 모를 수가 있습니다. 8절에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고 했습니다. 거듭난 증거, 열매를 보고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1) 회개하게 됩니다. 죄에서 씻음 받았으니 하나님을 향해 이제 죄를 회개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신앙을 고백하게 됩니다. 3)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세상에만 소망을 두고 살던 사람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천국을 바라보고 영적인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께 대해 죽었던 생명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향해 살아났으니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향하게 됩니다. 거듭남의 은혜를 주시기 위해 계획하신 하나님의 방법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 주신 방법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위해 기꺼이 십자가에서 피 흘리셨고, 이제 성령이 오셔서 구원받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적용시키시므로 거듭나고 영생 얻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6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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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을 깨끗하게 하시다

설교일 : 2021.11.28.주일 성 경 : 요2:13-25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에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해서 흩어져 있는 많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모여들고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성전에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전 안에서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광경을 목격하셨습니다. 거룩해야 할 성전 뜰에서 많은 장사꾼들이 판을 벌리고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제사에 제물로 드려질 짐승들 곧 소, 양, 비둘기 등을 팔고 있었습니다. 성전에서 쓰는 돈으로 바꾸어 주는 환전상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상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거룩한 집이 장사하는 곳으로 쓰이고 있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습니까. 예수님은 의로운 마음에서 올라오는 거룩한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셨습니다.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셨습니다.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고 외치셨습니다. 그러면서 이르시기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예수님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십 육년 동안에 걸쳐 지은 성전을 네가 어떻게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영적으로 어두우니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첫째,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곳입니다 구약시대의 성전이나, 신약시대인 오늘날의 교회는 모두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곳입니다. 장사하는 곳이 아닙니다. 마21:13절에는 예수님께서 구약성경의 말씀을 들어서 말씀하시기를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돈벌이를 하려고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을 이용하고, 하나님께 제사 드리러 온 성도들을 이용해서 장사를 하고 있으니 마치 강도들과 같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성도들이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듣고, 서로 예수님 안에서 믿음의 교제를 나누고, 섬기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입니다. 사사로운 이익이나 목적을 위해서 쓰여서는 절대 안 되는 거룩하고 경건한 곳입니다. 둘째, 예배는 의식보다 내용이 중요합니다 구약시대에는 소나 양이나 비둘기를 제물로 바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깨끗하고 흠 없는 짐승을 잡아서 제단에 올리고 불에 태워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제물의 피는 성전이나 제단에 뿌려졌습니다. 이것을 제사의식이라고 합니다. 제사의식에 쓰여지는 기구들도 많았는데, 번제단, 물대야, 떡상, 촛대, 향단, 속죄소 등이 있었습니다. 성전이 사람들의 욕심이나 탐욕으로 강도의 소굴이 되고, 돈벌이를 하는 장소가 되어도 의식은 그럴듯하게 화려하게만 드리면 된다는 생각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거룩하고 진실하고 영적인 예배를 받으십니다. 요4:24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셋째, 교회의 중심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예수님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앞으로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셔서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삼일 만에 살아나셔서 우리의 의가 되어 주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하나님과 화목시키는 화목제물이 되려고 오셨습니다. 구약의 모든 제사제도와 제물되는 짐승들은 예수님과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사역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이런 모든 제사제도와 기구들과 제물들은 오실 예수님을 나타낸다고 해서 ‘예표’라고 합니다. 실체는 예수님이고 그런 것들은 그림자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와 부활을 이루시므로 구약시대의 예표적이고 낡은 의식제사와 성전시대는 끝나고, 새로운 신약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구약시대나, 신약시대인 오늘날에나 성전과 모든 교회의 중심은 예수님입니다. 구약시대는 오실 예수님이, 신약에는 오신 예수님이 중심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우리 죄가 사해졌고, 구원받아 천국 백성됨을 확실히 믿고 고백하는 자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십자가와 부활, 이것이 바로 교회의 기초요, 중심입니다. 항상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확실히 믿고, 감사함으로 예배드리고, 교회를 소중히 여기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
6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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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설교일 : 2021.11.21.추수감사절 성 경 : 골1:3-6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를 위해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사도 바울도 골로새교회의 성도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항상 기도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3절에 보면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합니다. 무엇이 감사한 것일까요? 우리들에게도 이런 감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감사했습니다 성도들에게 있는 ‘믿음’에 대해서 감사했습니다. 믿음은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믿음이라고 했나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얻게 되는 은혜들이 많습니다. 죄사함, 구원, 하나님의 자녀됨, 의롭다함, 영생, 천국, 부활을 얻게 됩니다. 반대로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죄사함도 없고, 구원도 없고, 영생도 없고, 마귀만 따라 죄 가운데 살다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불에 떨어지고 맙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얼마나 귀하고 영광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믿음은 내가 스스로 믿어서 갖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열어주셔서 예수님을 믿게 해 주셔야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엡2:8에 보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지구상에는 이러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 갖지 못한 사람들, 두 종류의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 속해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는 나에게도 이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둘째,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감사했습니다 골로새교회 성도들이 서로 사랑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사도 바울은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은 예수님이 주신 새 계명입니다. 요13:34에 보면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사로 사랑하라”고 했어요. 요15:12에도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순종하면 복을 받습니다. 여러분도 사랑생활을 하십시요. 서로 사랑하는 일을 실천하십시요.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다투고 싸우는 생활에는 하나님의 은혜도 축복도 없습니다. 참 교회는 하나님의 바른 말씀이 선포되고, 바른 신앙을 고백하는 교회입니다. 특히 바른 말씀을 실천하는 교회 즉 서로 사랑하는 교회가 참 교회입니다. 우리들도 서로 상대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생활을 통해 참교회를 세워나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감사했습니다 하늘에 쌓아 둔 소망이란 무엇을 말할까요? 예 천국과 부활, 영생 등 영광스러운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은 세상 것들이 아닙니다, 그리고 잠시 있다가 없어지고 사라지는 것들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모두 하늘에 영원히 영광스러운 것들을 쌓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것들을 소망으로 삼고 살아가는 자들은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다가 어려움을 만나도 얼마든지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롬8:18에 보면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나이가 많이 들어 세상을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바라보면서 기뻐했습니다. 딤후4:7-8에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미국의 청교도신앙인들은 고난의 때에도 수확을 거두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로 예배드리고 음식을 나누며 기뻐했습니다. 이것이 추수감사절의 시작이잖아요.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광야에서 40년 동안 많은 고생을 했지만 함께해 주시고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해마다 초막절을 지켰습니다. 여러분 우리들도 지금은 전염병으로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아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특히 우리에게 주신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성도들을 향한 사랑과,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주신 하나님께 항상 감사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6 months ago
선한교회

예수님의 처음 표적

설교일 : 2021.11.14.주일 성 경 : 요2:1-12 갈릴리 가나에서 결혼잔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도 초청을 받았습니다. 잔치가 한창인데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아들 예수에게 이 사실을 알립니다. 그리고 하인들에게는 예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 곳에는 율법의 정결예식을 따라 손을 씻는 물 항아리 여섯 개가 놓여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인들에게 물을 떠서 그 항아리를 채우라고 하십니다. 그리고는 떠서 잔치를 주관하는 연회장에게 갖다주라고 하십니다. 하인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했습니다. 물맛을 본 연회장은 깜짝 놀랐습니다. 최고의 포도주 맛이었습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신 예수님께서 처음 행하신 표적입니다. 본문 11절에 보면 이 영광을 보고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었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오늘 말씀에서 세 가지 교훈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기적은 믿고 순종하는 곳에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께서 능력으로 이 잔칫집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하인들에게 예수님께서 시키는대로 하라고 지시 합니다. 하인들은 그대로 순종했고 그 결과 놀라운 기적,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곳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여호수아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서 여리고성을 돌 때 그 든든한 성이 무너져 내리는 기적을 보았습니다(수6:1-21). 나아만 장군은 선지자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몸을 씻을 때 그 몸에 들었던 문둥병이 깨끗이 치료받는 기적을 경험합니다(왕하5:8-14). 날 때부터 소경된 자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실로암 못에 가서 눈을 씻었더니 그 눈이 환히 떠지는 기적을 봅니다(요9:1-11). 문둥병자 열 명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러 가는 도중에 그 병이 깨끗이 나았습니다(눅17:11-19). 오늘날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 주십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며 믿고 순종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예수님을 영접하면 누구든지 새롭게 변화됩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것은 놀라운 변화입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에 따라 정결예식을 행하는 항아리를 사용하신 것은 사람들이 새롭게 변화되는 것은 율법을 행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서 된다는 것을 나타내주는 것입니다. 고후5:17에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요1:12에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참으로 놀라운 변화입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것은 우선 맛이 달라졌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사는 자가 인생의 맛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에게로부터 기쁨과 평강과 은혜가 내려오고 채워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가치도 달집니다. 항아리에 있던 물은 그저 손이나 씻는 물이었지만 포도주는 귀한 자의 상에도 올려지고 누구에게나 필요한 요긴한 것으로 바뀐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백성이 되고, 영생을 얻게 되니 얼마나 놀라운 변화인지요. 예수님 없으면 마귀에게 끌려 죄만 짓다가 지옥 불에 떨어지고 말 사람이었는데 말입니다. 색깔도 달라졌습니다. 손 씻는 물은 흐릿하고 뿌옇지만 포도주는 색깔이 예쁘고 맑고 선명하잖아요. 진실로 예수님 안에 있으면 얼굴도 달라지고, 성품도 달라지고, 모든 것이 변화가 됩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셋째,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주는 표적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이신데, 예수님께서 물을 다스리셔서 초자연적으로 포도주가 되게 하신 사건은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주시는 것입니다. 앞으로 계속 예수님께서는 바람과 물결을 다스리기도 하시고, 마귀를 명하여 쫓아내시기도 하시며, 병든 자를 고쳐주시는 등등의 놀라운 기적들을 많이 행하시게 됩니다. 이는 모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나타내시는 일들입니다. 그 일들을 보고 예수님을 믿으라는 것이지요. 오늘 말씀에도 이 영광을 보고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11절). 성도님들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6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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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처음 제자들

설교일 : 2021.11.7.주일 성 경 : 요1:35-51 예수님의 제자 열 두명 중에 처음 다섯 명을 부르시는 말씀입니다. 먼저 세례요한의 제자였던 안드레와 요한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그분이 메시야임을 깨닫게 된 안드레는 바로 가서 시몬을 데려옵니다. 시몬은 후에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초대교회의 기둥과 같은 사도가 됩니다. 빌립은 예수님이 친히 불러주십니다. “나를 따르라” 하실 때에 그는 즉시 따릅니다. 빌립도 예수님이 모세와 선지자들이 오리라고 한 그 분임을 깨닫고 바로 나다나엘에게 가서 전합니다. 그러나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하면서 의심합니다. 그는 그렇게 크신 분이 너무나도 작고 초라한 나사렛 같은 시골에서 나오실 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와서 보라’는 빌립의 말에 예수님께로 왔다가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중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이스라엘의 임금’이심을 고백하게 됩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놀라운 축복의 말씀을 주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그들은 제자가 되어 예수님을 따르면서 실제로 이렇게 놀라운 일들을 수도 없이 많이 보고 경험하게 됩니다. 첫째, 예수님은 자기를 따를 제자들을 부르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주님은 열 두명의 제자들을 부르시고 훈련시키셔서 오늘날 수많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세우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배반한 가룟유다를 제외한 당시의 모든 제자들은 이미 죽어 천국에 가 있지만, 오늘 예수 믿고 구원 받은 모든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을 믿으니 예수님의 제자인 것입니다. 마28:19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로 삼아’ 이 말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모든 자들을 가리킵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제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게 되는 길은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부모님을 통해서, 혹은 누군가의 전도를 받고, 혹은 스스로 등등. 어떤 분들은 큰 병에 걸렸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치료받고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도 있습니다, 큰 사고를 당했다가 예수님을 만난 사람도 있습니다. 제자들도 세례요한이 알려줘서 예수님을 따른 제자들도 있고, 전도 받고 온 제자도 있고, 예수님이 직접 부른 제자도 있잖아요. 오늘도 예수님은 여러 나라. 여러 민족 세계 곳곳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응답해서 예수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모두 다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나를 제자로 불러주신 예수님께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 받은 자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다섯 명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막3:14에 보면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과 함께 있는 자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시고 승천하셨는데 지금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과 함께 하고 예수님을 따를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가시면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님은 지금도 믿는 모든 자들의 마음속에 오셔서 항상 함께 하십니다. 성령은 곧 예수님의 영입니다. 또 예수님의 모든 말씀이 성경입니다. 구약은 오실 예수님을, 신약은 오신 예수님에 대한 말씀으로 가득합니다. 오늘날은 성령 안에서 그리고 성경말씀을 따르는 것이 곧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이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여러분들도 성령으로, 말씀을 따라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셋째,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예수님을 전하는 자들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친구들에게, 예수님을 의심하는 친구들에게도 말입니다. ‘와서 보라’고 하면서 예수님에게로 데려와서 만나게 했습니다. 그때 그들이 예수님을 바로 깨닫게 되었고, 의심도 풀리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들도 누구든지 예수님께로 데려와 구원받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신 것은 또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다시 막3:14에 보면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예 전도하게 하시려고 부르셨다고 했습니다. 막16:15에도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게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했고, 행1:8에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꼭 기억해야겠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들을 제자로 부르신 것은 또 다른 제자를 삼으라는 명령이 담겨져 있는 부르심인 것을 말입니다.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전도하는 삶을 살아야하겠습니다. 그때 우리를 제자로 부르신 예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고 축복하실 것입니다. 아멘!
6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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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어린 양

설교일 : 2021.10.31.주일 성 경 : 요1:29-34 예수님께서 나아오시는 것을 보고 세례 요한이 사람들에게 외쳤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그러면서 자기도 예수님을 알지 못했으나 자기에게 물로 세례를 주라고 하신 분, 바로 하나님이 알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또 누구에게든지 성령이 내려서 그 위에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분이 바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분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라고 알려 주셨다고 했습니다. 요한이 요단강에서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풀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서 예수님 위에 머문 것을 보았습니다. 하늘에서 나오는 음성도 들었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본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키면서 저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무리들에게 확신 있게 외쳤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라고 알렸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이 말은 무슨 말일까요? 이 말은 예수님이 앞으로 무슨 일을 하실 것인지를 나타내주고 있는 아주 중요한 말입니다. 우리 신앙의 시금석이 되는 핵심이 담겨 있는 말입니다. 첫째,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평생에 죄를 지으며 살아갑니다 아담 이후로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은 죄를 지으며 살아갑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죄도 있지만, 머리나 마음속으로 짓는 죄도 있습니다. 천국은 아주 거룩한 곳입니다. 죄가 손톱만큼만 있어도 절대 들어갈 수 없는 곳입니다. 그래서 롬3:23에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선하고 아름답게 만드셨는데, 뱀의 유혹을 받아 죄에 빠진 인간은 부패하고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죄를 짓는 일에는 익숙하지만 의롭고 선한 일은 좀처럼 할 줄 모르는 죄악된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창6:5에는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라고 했고, 창8:21에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형벌을 받을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형벌의 장소는 여러분이 잘 아는대로 바로 ‘지옥’입니다. 그렇지만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죄인들이 구원받을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바로 독생자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서 그에게 형벌을 대신 쏟아 부으시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의 죄는 용서하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이제 유일하게 예수님을 통해 죄사함과 구원받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려고 오셨습니다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지시기 위해서는 사람이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사람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시지만 죄는 없으신 분이십니다. 롬6:23에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요”라고 했습니다. 사망은 죄값으로 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니 사망과 관계가 없습니다. 죽으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 말이 바로 오늘 말씀대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죄를 사함 받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우리들의 ‘죄’가 되셔서 대신 죽으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죄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왜요? 나의 죄가 예수님에게로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여러분의 죄도 예수님에게로 넘어가고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죄사함을 받은 자로, 죄가 없는 자로 서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은 죄사함을 위한 속죄 제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는 죄를 지으면 양이나 소 혹은 비둘기를 제물로 바쳐서 죄 사함을 받게 했습니다. 죄인이 제물을 제사장에게 가져와서 죽입니다. 그리고 제단에 올려놓고 불에 태웠습니다. 죄인이 죽어야하는데 제물이 대신 죽는 것입니다. 이때 제물로 드려지는 짐승을 속죄제물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구약시대의 제물은 완전하고 영원하지 않습니다. 죄를 지을 때마다 또 다른 짐승을 가져가서 제사를 드려야하니까요. 사실 이 제물은 앞으로 오실 예수님을 나타내고 있는 거였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이 오셔서 완전하고 영원한 속죄제물의 양이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어주심으로 한 번에 그리고 영원히 우리들의 죄를 사해주시는 속죄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말은 바로 예수님이 속죄제물이 되심을 나타내고 있는 말입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이 일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습니다. 이제 그를 믿는 모든 자들은 죄사함 받고 하나님 앞에 죄없는 자로 서게 되어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아멘!
6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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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의 그리스도 증거

설교일 : 2021.10.24.주일 성 경 : 요1:15-18 지난 주 세례요한의 자기증거에 대해서 설교했습니다. 요한은 자신의 존재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예수는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자이신 반면, 자기는 회개케 하는 물로 세례를 베푸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예수님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치 못할 자라고 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님과의 관계에 있습니다.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이루어질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성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하나씩 하나씩 씻겨 주셨습니다. 베드로의 차례가 오자 그는 단호히 만류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종이 주인의 발을, 제자가 스승의 발을 씻기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발을 씻기지 않으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오늘 우리도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자기를 깨닫고 사는 삶이 참으로 복된 삶이요, 영생의 삶입니다. 본문에서는 세례요한이 자신의 존재의 이유이며 목적이며 가치가 되시는 예수님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세 가지로 외치는 그의 증언을 상고하면서 은혜 받겠습니다. 1. 먼저 계신 분(선재하신 그리스도) (15절) 15절에서 요한이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예수님은 요한보다 육 개월 나중에 오십니다. 이에 대해 요한은 출생적으로는 예수님이 자기보다 나중이지만 본래적으로는 예수님이 자기보다 앞서 존재하신 분이시라고 증언합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신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요1:1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하셨고 요1:14에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하셨습니다. 태초부터 말씀으로 계신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오신 분,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뜻입니다. 미5:2에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예수님의 근본이 상고에 있고 영원에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8장에서 예수님께서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시자 유대인들이 “네가 아직 오십도 못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고 반문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이천 년 전에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들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은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 (16-17절) ‘은혜’는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모든 사랑의 선물을 말합니다. 특히 구속에 관한 모든 일들, 즉 죄사함, 칭의, 양자, 성화, 평강, 기쁨, 영화, 천국, 영생 등을 가리킵니다. 이런 모든 은혜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분에게는 이런 은혜들이 충만하십니다. 왜냐하면 그 분 자신이 이 은혜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은 이런 은혜들을 믿는 자들에게 흘러 보내주시는 근원이 됩니다. 세상에서 줄 수도, 얻을 수도 없는 은혜들입니다. ‘진리’란 어떤 시대나, 지역이나, 인종이나, 환경 등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이치나 도리를 가리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고 ‘복음’을 가리킵니다.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이요, 복음이십니다. 세상의 법이나 이치는 시대나 사람 혹은 환경에 따라 바뀌기도 하고 변하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이 없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구원받는 구속의 도리는 영원토록 동일합니다. 예수님은 진리이시고 그에게서는 진리가 충만하게 훌러 나옵니다. 히13:8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말씀하십니다. 3. 독생하신 하나님 (18절)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누구도 그분을 볼 수는 없습니다(요4:24). 또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시고 역사하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을 볼 수 있을까요? 세례요한은 하나님을 보는 방법이 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보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이 나타나셨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18절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예수님의 제자 빌립이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고 하셨고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다”고 하셨습니다(요14:8-10). 요10:30에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도 하셨습니다. 바로 예수님에게 나타나신 능력이 하나님의 능력이고, 예수님에게서 나타나신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이고, 예수님에게서 나타나신 성품이 바로 하나님의 성품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면 하나님을 본 것이고, 예수님을 닮아가면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기도 하고 만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이 ‘임마누엘’입니다 그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마1:23). 하나님은 사람들이 볼 수 없게 존재하시는 분이시지만(딤전6:16), 그의 독생자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심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6 months ago
선한교회

세례 요한의 자기증거  

설교일 : 2021.10.17.주일 성 경 : 요1:19-28 구약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 만에 광야에 등장한 세례요한, 그는 자기를 증거하고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그는 자기를 바로 알고 자기의 사명을 바로 깨달은 자입니다. 자기를 바로 아는 일이 우리의 인생에서 참으로 중요합니다. 나는 어디로부터 와서, 무엇을 위해 살다가,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모든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다가, 마지막에 하나님 앞에 서야 할 존재로 지음 받았습니다. 히9:27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칼빈은 기독교강요 제1권에서 바르고 견고한 지혜는 두 지식으로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참되고 건전한 지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인간을 아는 지식이다...하나님을 먼저 묵상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한 분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존재하기 때문이다...인간은 먼저 하나님의 얼굴을 묵상하지 않고서는 인간에 대한 참된 지식을 얻을 수 없다. 자신의 부패를 인정하기 전에는 항상 자기 의가 나타나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본문은 세례요한의 자기증거 세 가지를 말씀합니다. 첫째,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입니다 23절에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그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고 합니다. ‘소리’는 생각이나 의미를 남기고는 사라지는 존재입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소리를 내면 ‘사랑한다’는 의미만 남기고 ‘소리’는 없어지는 것입니다. 소금이 짠 맛을 내고는 녹아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이 세상에 나타내고 자기는 없어지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 자신과 사명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는 ‘주의 길을 곧게 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앞으로 오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고 준비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준비합니까? 말라기 선지자 이후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므로 사람들은 어두움과 죄악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지만, 그들의 상태는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할 상태가 되어있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상태 특히 마음 상태를 앞서 준비시키는 일을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요한을 예수님 앞서 육 개월 전에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그들의 죄를 깨닫게 하고 지적해 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나아와 죄를 회개했습니다. 그러면 그는 그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습니다. 회개는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는 길이요, 천국의 입구입니다. 예수님을 나타내는 ‘소리’!, 우리도 예수님을 세상에 전하고 나타내는 ‘소리’의 사명을 감당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둘째, 나는 물로 세례를 베푸는 자입니다 26절에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라고 했습니다. 그는 회개하는 자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의 세례는 회개의 세례였습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하는 세례입니다. 회개한 증거로 물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막1:8에 보면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면 성령을 받게 됩니다. 성령은 예수님의 영이요, 하나님의 영입니다. 예수님이 붙잡히자 그의 제자들은 모두 도망갔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랬던 그들이 오순절에 성령 세례를 받은 다음에는 담대하게 생명 내놓고 말씀을 전했으며,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로 변화되었습니다. 성령세례는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킵니다. 한국 교회사에 깡패대장 김익두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자 180도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종이 되어서 수많은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했습니다. 요한은 회개를 위한 물세례를 베풀었지만, 예수님은 성령세례를 부어주심으로 근본적으로 새사람, 새로운 성향으로 변화시켜주십니다. 성령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부어져서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시고, 능력으로 역사해 주시며,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를 갖게 하십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진심으로 믿고 회개하는 자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부어 주십니다(행2:38). 셋째, 나는 예수님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치 못할 자입니다 당시는 노예가 있던 시대였는데, 주인의 신발 끈을 풀고 매는 일은 가장 천하고 낮은 계층의 종들이 담당했다고 합니다. 요한은 바로 자신이 예수님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치 못할 자라고 합니다. 그의 겸손한 성품을 알 수 있습니다. 혜성같이 나타난 세례요한을 보고 사람들은 그들이 기다리는 메시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엘리야라고 하기도하고, 모세를 통해 약속하신 그 선지자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당시 세례 요한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으며 유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전혀 자기의 영광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은 사람들이 기다리는 그리스도 즉 메시야가 아니라고 분명히 선포할 뿐만 아니라 자신은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치 못할 천한 자요 낮은 자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조금만 유명해지면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실제 자기 자신보다 자기를 더 높이고자 하는 마음의 유혹을 받습니다. 잠16:18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했으며, 잠18:12에는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고 했습니다. 사6장에 보면 이사야 선지자가 성전에서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고,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했습니다. 그룹천사들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하며 하나님을 경배할 때, 이사야는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자기를 보게 되었습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하며 두려워할 때, 천사가 제단의 핀 숯을 그의 입에 대며 그의 죄와 악을 사해 주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고 선지자의 일을 감당하게 됩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한 번 돌아보고 발견하며, 죄를 회개하고 겸손하여 주님을 증거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삶을 사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6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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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육신이 되어

설교일 : 2021.10.10.주일 성 경 : 요1:1-14 요한복음은 예수님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을 증거하는 네 개의 공관복음서 중 예수님의 말씀들을 길게 기록하고 있는 특징이 있으며, 예수님의 신적인 면 즉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님을 깊이 있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네 개의 생물, 사자, 소, 사람, 독수리를 빗대어 사자와 같이 왕으로서의 예수님을 증거하는 마태복음, 소와 같이 충성된 종으로서의 예수님을 증거하는 마가복음, 사람의 질병과 치료 등 인생의 고통을 많이 만져주시는 인자로서의 예수님을 증거하는 누가복음 등으로 그 특징을 말하는데, 요한복음은 독수리처럼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어 독수리복음이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다른복음서는 예수님의 족보나 출생으로부터 말씀을 시작하고 있으나,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태초부터 말씀으로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1-3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계속 호칭처럼 불려지는 ‘말씀’이란 단어는 바로 예수님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천 년 전에 이스라엘의 작은 동네 베들레헴 마굿간의 말구유에서 사람을 입으시고 태어나셔서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인간으로 오신 예수, 그분은 만물이 창조되기 전에 계신 하나님이시고, 그가 만물을 창조하셨으며, 그가 곧 하나님이심을 밝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구원받아야 할 존재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인간을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을 그저 우리 눈에 보이는 한 인간으로만 본다면 그를 믿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함께 했던 요한은 예수님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주고 밝혀 줌으로서 우리에게 구원의 여망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던 인간이 사단에게 속아 타락하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죄의 종이 되어서 살아가는 인간을 하나님은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죄 없으신 그분이 세상에 친히 사람을 입으시고 오셔서 사람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죄에 빠진 사람들에게 죄를 사함받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 회복되는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구원하실 분은 하나님이셔야 하고, 죄가 없으셔야 했습니다. 동시에 사람이어야만 사람의 죄를 대신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일을 위해 사람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4대 성현 중의 한 사람으로만 본다면, 그저 훌륭하신 한 인간으로만 본다면 어느 누구도 그를 믿어 구원받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우리를 위해 사람이 되셨고, 우리 죄를 위해 죄인으로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으며, 우리를 의롭다하시기 위해 삼일 만에 사망 권세를 깨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 구원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을 때에 그는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으며 어두움에 비친 빛이십니다 4-5절에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생명은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그분 안에 만물의 생명도 있으며, 영적 생명도 있습니다. 그분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생명을 주신 창조자이실 뿐만 아니라, 허물과 죄로 죽은 영혼을 살리시는 영적 생명을 주시는 살리는 영이십니다. 짐승들은 죽으면 없어지고 맙니다. 흙으로만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흙으로 빚으시고 하나님이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살게 하신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영으로서의 영혼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위로 올라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영혼은 불멸하는 존재입니다. 이 영혼은 죄로 인해 죽어 하나님과 단절되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없이 사는 자가 죽은 자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영이 부어지므로 사람이 사람 되었는데, 죄로 말미암아 그 영이 죽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것입니다. 그것이 영적 죽음이요 하나님이 보실 때는 죽음인 것입니다. 이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주로 영접하므로 우리의 죄 문제가 해결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므로 다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듭남’입니다. 거듭난 자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님과 교제하며, 예배하며, 경배하며 사는 복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이생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고 내세에서도 그의 나라인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하며 복락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게 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지만 사람들은 그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영접하는 자 곧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 이름의 권세를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막6:17절에는 믿는 자들에게는 표적이 따르는데,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며, 새방언을 말한다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죄사함을 받고, 의롭다함을 받고, 하늘나라를 기업으로 받게 되며, 거룩하고 영화롭게 됩니다. 벧전2:9에는 하나님의 백성은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거듭난 자는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을 약속받은 자들입니다. 반대로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은 자요, 영생이 없는 자요,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을 자라고 성경은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그분을 구주로 모시고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아멘.
6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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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어떻게 창조하셨을까

설교일 : 2021.10.3.주일 성 경 : 창1:26-28, 2:7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6일 동안에 만드셨는데, 사람은 맨 마지막 날인 여섯 째 날에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는 아주 특별하게 만드셨습니다. 다른 생명체들과 전혀 다른 방법으로 만드셨습니다. 오늘은, 처음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어떻게 만드셨을까? 또 사람들은 처음에 지음 받은 그 모습 그대로 지금도 살아가고 있을까?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어떻게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하는 말씀들을 설교하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만드셨습니다 26절과 2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어야겠다고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라고 해서 얼른 생각하면 하나님이 한 분이 아니고 여러분이신가 하고 오해할 수 있는데, 여러분이 아는 대로 하나님은 한 분이 맞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 이십니다. 그러나 이 표현은 하나님이 존재하시고, 또 역사하시는 모습을 그렇게 나타낸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 이렇게 삼위로 존재하시고 역사하신다는 말입니다. 어려운 말입니다. 신학적인 용어로 ‘삼위일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세 위격으로 존재하시고 역사하시는 한 분 하나님이심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26절에서는 ‘우리’라는 장엄형 복수로 쓰고, 27절에서는 ‘자기’라는 단수 형태로 하나님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삼위일체의 진정한 의미와 표현은 인간의 유한한 지혜나 지각으로는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드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형상이나 모양은 하나님이 자신 안에 가지고 계신 성품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내재된 속성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요4:24) 겉으로 볼 수 있는 형태나 모양이 없으십니다. 물론 구약에서 사람이나 천사의 형태로 사람들에게 보이신 것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사람의 수준으로 자신을 나타내신 것입니다(신인동형설). ‘하나님의 형상대로, 모양대로’란 말은 하나님 안에 있는 성품들을 사람 안에 두어서 만드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고 사람이 하나님인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속성들을 닮게 만드신 것이지 하나님과 꼭 같이 만드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성품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사랑, 온유, 거룩함, 의로움, 오래 참음, 영원함, 공의, 정의 등등 아름다운 성품들입니다. 짐승들과 같은 다른 생명체들은 이런 아름다운 성품들이 없습니다. 그냥 본능만 가지고 그 본능대로 살아갑니다. 이런 성품들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과 사랑의 대상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사단에게 속아서 죄를 짓게 되자 이런 아름다운 하나님의 성품들이 약해지기도 하고 변질되기도 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요? 예 죄 때문입니다.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 먹은 불순종의 죄를 지은 이후로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은 죄의 종이 되어서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이렇게 죄는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들을 일그러지게 해서 사람들을 악하고 비참하고 불행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의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셔서 죄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죄 사함 받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대신 죄 값을 치르신 것이지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이제 세상에 있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기만 하면 죄 사함 받고, 예수님을 닮아가므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해 주십니다. 그래서 그는 점점 본래 지음 받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그 성품과 인격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사람, 아름다운 사람, 복된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어 만드셨습니다 2장7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다른 생명체들은 그냥 흙으로 만드셔서 숨 쉬며 살게 하셨는데, 사람은 달랐습니다. 똑같이 흙으로 만드셨지만, 하나님이 친히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셔서 살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생령’이 되었다는 말은 살아있는 생명체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생기’가 무엇이냐 하는 물음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들이 있지만 저는 ‘하나님의 영’을 가리킨다고 확신합니다. 그 이유는 요한복음에 나타나 있는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요20:22에 보면 “..그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고 했는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서 ‘숨을 내쉬며’라는 말씀이 오늘 말씀에 ‘코에 불어넣으시니’하는 말씀과 같은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빚으시고 생기를 코에 불어 넣어 살아있는 존재로 만드신 것처럼, 예수님도 허물과 죄로 죽은 사람들에게(엡2:1)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 다시 살아나게 하십니다 중생하게 하십니다, 거듭나게 하십니다(요3:5,8).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영을 불어 넣어주셔서 살게 하시므로 사람은 하나님과 사귀고, 교통할 수 있는 생명체로 만드신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사귀기도 하고, 교통할 수 있다니, 참으로 놀랍고 감사한 일입니다. 짐승들에게는 그런 특권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존귀하고 또 만물의 영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렇게 존귀하게 만들어진 사람이 마귀에게 속아 죄 가운데 빠지게 되니 하나님을 멀리하고, 싫어하고, 때로는 대적하는 존재로 전락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의 끝은 무엇인가요? 예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 던져지는 종말을 피할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참으로 두렵고 무서운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어김없이 죄인들에게 찾아오셨고,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 예수님을 통해 회복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자들에게는 죄 사함의 은혜를 입혀 주시고, 하나님의 영인 성령을 부어주셔서 다시 살게 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사귀며 교통하며, 동행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신 것입니다. 죄 때문에 일그러지고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도, 생기도 이제 예수님 안에서 다 회복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모셔들이면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셔서, 하나님의 성품들을 다시 회복하고 닮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6 months ago
성동교회(강북)

4월 12일 설교 요약

마음이 청결한 자가 누리는 하나님을 보는 복 (마 5:8)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거룩할지어다”(레11:45)라는 말씀으로 ‘청결’을 명령하셨습니다. 이러한 청결은 단순히 몸을 깨끗이 씻는 ‘몸의 청결’이 아닌 ‘마음의 청결’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본질적으로 마음이 악하고, 또 그 정도가 심하여 하나님의 말씀처럼 스스로 깨끗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저런 명령을 주셨을까요? 하나님께서 마음의 청결을 명령하신 이유는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믿게 하기 위함입니다. 히브리서 9장 14절은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고 말씀합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양심(마음)을 깨끗하게 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삶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뿐 아니라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되어 거룩한 삶까지 살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됨으로 ‘하나님을 보는 복’까지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누리며, 하나님께 의인으로 인정받는다는 의미입니다(시24:3-6). 이것은 우리가 구원받아 누리는 모든 복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은 공회에서 예수님을 증거하며 하나님을 보는 복을 누렸습니다. 이때 스데반은 예수님께서 스데반을 기뻐하시며 보좌에서 일어나신 모습까지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보는 복을 누림으로 예수님의 기쁨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된 우리 또한 하나님을 보는 복을 누리며 예수님의 기쁨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되어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보는 복을 누리는 성도가 됩시다.
6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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