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교회

그리스도와 그의 양

선한교회 2022. 3. 7. 15:42 설교일 : 2022.3.6.주일오전 성 경 : 요10:22-29 예수님이 성전 안 솔로몬 행각을 거니실 때에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물었습니다.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합니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미 말하였으되 너희는 믿지 않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도 나를 증거하지만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계속해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오늘은 예수님께서 양과 목자의 관계를 통해서 주시는 세 가지의 교훈을 통해 은혜를 나누시겠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언젠가 그리스도를 그들에게 보내줄 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는 구원자로서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말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나 사역을 보면서 사람들은 그분을 그들이 기다리는 그리스도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유대인들은 믿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믿으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언젠가 그리스도를 그들에게 보내줄 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는 구원자로서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말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나 사역을 보면서 사람들은 그분을 그들이 기다리는 그리스도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유대인들은 믿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믿으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첫째는 이미 예수님께서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말해왔다는 것이며, 둘째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예수님의 사역이 그것을 증거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미 앞에서 배운 것처럼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일,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신 일, 오병이어의 역사,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자의 눈을 뜨게 하신 일 등등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나타내는 증거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26절). 여러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이 믿어지나요? 그렇다면 예수님의 양입니다. 이 사실이 믿어져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믿어지는 성도님들은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예수님의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릅니다 본래 양들은 자기 목자의 음성만 듣고 따라갑니다. 타인의 음성은 듣지 않을 뿐만 아니라 피해서 도망갑니다. 예수님의 양들도 목자이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자들입니다. 목자이신 예수님도 그들을 잘 아신다고 말씀하세요. 27절에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의 양된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이렇게 두 부류로 나뉘어집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백성인 자와 아닌 자, 천국의 시민인 자와 아닌 자, 구원받을 자와 멸망 받을 자, 이것을 하나님의 ‘선택’이라고 합니다. 창세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구원할 자를 선택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런 자는 때가 되면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믿고 예수님을 따르게 되는 것이지요. 오늘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선택의 복을 받은 것입니다. 감사하며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잘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셋째, 예수님은 양들에게 빼앗기지 않는 영생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자기 양들에게 영원한 생명인 영생을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28절에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자기 양들을 위해 목숨을 주신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그를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예수님의 생명인 영생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생명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살아나심으로 얻으신 영원히 죽지 않는 부활의 생명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기 양들에게도 예수님은 그의 생명을 주셔서 천국에서 영생 복락을 누릴 것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생명은 어느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이 죄를 지으면 회개시키고, 잘못된 길로 가면 돌이켜 바로 가게 해 주시고, 악한 자가 해하려고 하면 친히 지켜주셔서 마침내 천국에 이르도록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은 생명과 능력이 무한하신 목자이십니다. 여러분에게도 빼앗기지 않는 영생을 주신 예수님께 감사하고 예수님의 인도를 따라 영원한 생명의 길을 걸어가시길 바랍니다~ 할렐루야! 아멘.
4 months ago
선한교회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

선한교회 2022. 3. 2. 14:20 설교일 : 2022.2.27.주일오전 성 경 : 요10:7-18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신가를 여러 가지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본문에서는 ‘나는 양의 문이다’ 그리고 ‘나는 선한 목자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나라에는 양을 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양들을 몰고 다니면서 풀도 먹이고, 물도 먹이고, 우리에 넣기도 하고, 양을 지키기도 하는 사람을 목자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성도들을 양이라고 비유하시면서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선한 목자가 있으면 반대로 악한 목자도 있겠지요? 그들을 본문에서는 삯꾼 목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삯꾼 목자는 그저 돈만을 벌기 위해서 양을 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사자나 곰과 같은 맹수들이 오면 양들의 생명을 생각지 않고 도망가 버립니다. 당시에도 많은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 즉 양들과 같은 백성들을 잘 인도해야 할 종교지도자들이 양들을 사랑하기는커녕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서 백성들을 잘 못 가르치기도 하고 백성들의 재물을 약탈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삯꾼 목자들이라고 말하면서 그들은 목자도 아니요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달아나 버리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리가 양을 물어가고 헤친다고 했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우리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알아보겠습니다. 첫째,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11절을 보면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라고 하셨고, 15절에도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예수님은 죄에 빠진 사람들을 길 잃은 양이라고 하셨고, 목자없는 양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잃어 버린 양들을 찾으러 이 세상에 오셨고, 목자 없는 양들의 목자가 되시려고 오셨습니다. 사실은 에덴동산에서 범죄 한 후 하나님을 잃어버린 인간들은 오히려 마귀를 따라 죄를 짓는 길로 들어서고 말았습니다. 양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마귀는 도둑과 같아서 사람들의 영혼을 도둑질 하고 죽이고 멸망시킵니다(10절). 예수님은 그들을 죄에서 건져주시기 위해 자기가 대신 죄값을 치르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목숨을 버리신 것입니다.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신 것입니다. 막10:45에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고, 요일2:2에도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예수님의 양이고 예수님은 그들의 선한 목자가 되신 것입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그의 양들을 죄사함의 길로, 영생의 길로, 천국의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만 따라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양들에게 구원과 생명을 주셨습니다 10절에 보면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9절에도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믿는 자의 구원이 되십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찬송하고 기도할 때 지진이 나면서 옥문이 열리고 착고들이 풀렸습니다. 그때 간수가 두려워하면서 내가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행4:12에도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지옥의 길에서 구원하여 천국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또 예수님은 믿는 자의 생명의 되십니다. 요일5:12에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14:6에도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 안에 영생이 있습니다. 천국에서의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예수님 밖에는 영원한 멸망이 있습니다.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은 누구든지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함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양들을 돌보실 뿐만 아니라 양들에게 구원과 생명을 주시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이 사실을 확실히 믿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4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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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게 하시는 그리스도

선한교회 2022. 2. 26. 15:00 설교일 : 2022.2.20.주일오전 성 경 : 요9:1-12, 35-41 예수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셨습니다. 제자들이 묻습니다.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인가요 자기인가요 부모인가요?” 예수님이 대답하십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 때문이 아니다.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그리고는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말씀하십니다.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맹인이 가서 씻고는 눈이 떠져서 밝은 눈으로 돌아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나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때 그가 말합니다.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어요”라고 말입니다. 후에 그는 예수님을 반대하던 바리새인들 앞에서 예수님을 ‘선지라’라고 대답했고, 또다시 예수님을 만났을 때는 ‘주’라고 고백하며 예수님을 믿고 영접합니다. 이제 그는 육신의 눈만이 아니라 영적인 눈도 뜨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에게서 하나님이 나타내고자 하셨던 일입니다. 첫째, 예수님은 그에게 육적인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이 사람은 날 때부터 소경이니 세상의 아무 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보고 싶을까요? 그런데 제자들은 그가 맹인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이냐고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사실 그 질문은 당시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고 관심이었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맹인의 마음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고 해결해 주기는커녕 어떤 죄 때문인지를 따지며 그저 말꺼리로 삼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들에게는 맹인의 죄 문제도 육신의 병 문제도 아무것도 해결해줄만한 능력이 없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그 병의 원인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의 병을 고쳐주시고 싶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불행에 처한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분입니다. 죄에 빠져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불에 떨어질 처지에 빠진 수많은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어 주신 분이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긍휼과 사랑이 풍성하신 분입니다. 성도님들도 어려운 문제가 생길 때 예수님께 기도해서 그분의 긍휼과 사랑의 은혜를 입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육신의 문제도 돌아보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해결해 주실 충분한 능력을 가지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둘째, 예수님은 그에게 영적인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맹인 되었던 이 사람은 처음에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몰랐습니다. 그저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으로만 알았습니다. 11절에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바리새인들과 대화하는 중에 17절에 보면 “이에 맹인 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되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되 선지자니이다 하니”라고 하며 예수님을 선지지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다시 만난 그가 “네가 인자를 믿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라고 대답하더니 예수님이 “지금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라고 하시자 “주여 내가 믿나이다”하며 예수님께 절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35-38절). 놀라운 영적인 변화입니다. 그는 이제 영적으로도 예수님을 알아보게 된 것입니다. 영적인 눈이 떠진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그의 육신의 눈을 뜨게 해주신 궁극적인 목적은 그의 영적인 눈을 뜨개 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영적인 눈이 떠져야 예수님을 믿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니까요. 사실 죄에 빠진 모든 인간들은 영적으로 맹인입니다. 그러다가 여러 가지 경유로 영적인 눈이 떠져서 예수님을 보고 믿게 됩니다. 이 맹인은 육신의 눈이 멀었던 일로 영적인 눈이 떠졌습니다. 어떤 사람은 병에서 고침 받고, 어떤 사람은 실패를 통해서, 어떤 사람은 누군가의 전도를 받고, 어떤 사람은 믿는 부모님을 통해서 등등 여러 경로로 예수님께 나오게 되고 영적인 눈이 떠져 믿고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39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이 믿어지고 천국과 영생이 믿어지는 성도님들은 영적으로 맹인 되었다가 눈이 떠진 사람들입니다. 이런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믿음생활 잘 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할렐루야 아멘,
4 months ago
선한교회

간음한 여자의 용서

선한교회 2022. 2. 15. 20:20 설교일 : 2022.2.13.주일오전 성 경 : 요8:1-11 어느 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예수님 앞에 끌고 옵니다. “선생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런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는데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라고 묻습니다. 사실 이들은 예수님께 옳은 가르침을 받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고발할 조건을 얻으려고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했던 것이지요. 사람을 악한 목적으로 시험하는 일은 아주 나쁜 일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땅에다 무언가를 쓰신 후에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이 말씀을 들은 그들은 양심에 가책을 느끼며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님과 그 여자만 남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여자는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처지에 처해 있었지만 예수님의 은혜로 죽음의 자리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첫째,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다 죽을 죄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의 죄를 지적하며 율법으로 판단해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의 죄를 들여다보게 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이런 죄를 진 여자는 죽여야 한다며 위협과 살기가 등등해서 찾아왔던 그들은 권위 있는 예수님의 말씀에 모두 다 양심의 가책을 받고 돌아갔습니다. 여러분!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다 죄인입니다. 롬3:10에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님도 없으며”라고 했고, 롬3:23에도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로 모든 사람들은 죄인으로 태어나서 평생 죄를 지으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 즉 천국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죄에서 나오지도 못하게 되었지요. 죄의 종이 되어 버렸거든요. 누군가가 그를 죄로부터 건져주어야만 구원받고 하나님의 영광인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죄로 인해 죽음의 처지에 놓여있던 본문의 여자, 즉 간음한 여자의 모습은 세상 모든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런가하면 돌을 들고 여자의 죄를 정죄하고 판단하며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 역시 세상 모든 사람들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도 죄로 인해 죽을 자리에 있으면서 다른 사람의 죄를 판단하며 죽이려고 하는 모습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롬3:9에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세상 모든 사람들은 용서 받아야 하는 죄인들임을 성경은 선언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죄인임을 고백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십니다. 구원의 첫 걸음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회개하는 일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정죄하지 않으시고 용서하십니다 두려워 떨고 있는 간음한 여자에게 예수님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때 이 죄인 된 여자는 얼마나 감사하고 기뻤을까요?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완전한 재판장이십니다. 그러나 율법의 심판 앞에 두려워하는 여자를 예수님은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자신들도 죄가 있는 죄인 된 무리들이 이 여자를 정죄하고 죽이려고 달려들다가 예수님의 말씀으로 양심의 가책을 받고 돌을 놓고 다 돌아갔지만 죄 없으신 예수님은 이 여자의 죄를 완전하고 공정하게 물으실 권위가 있으셨지만 예수님은 그를 심판하거나 정죄하지 않으시고 용서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사람들을 정죄하러 오시지 않으셨어요. 오히려 용서하시고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요3:17에 보면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과 심판 아래 놓인 사람들의 죄를 대신 담당하셔서 십자가에서 그 저주와 형벌을 다 받으셨습니다. 대신 죄값을 치르신 것이지요. 이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믿으면 죄로 인한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되고 죄로부터 구원을 받아 하나님과의 관계도 회복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의롭게 되어 그의 나라 곧 천국을 기업으로 상속받게 됩니다. 다만 예수님은 용서받은 여자에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당연한 말씀이지요. 죄로 인해 죽어야 마땅한데 살리심을 받았으니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은혜를 갚는 길이요, 용서받은 자의 마땅한 삶이겠지요. 여러분! 여러분들도 하나님 앞에서 나는 죽어 마땅한 죄인임을 인정하고 고백하며,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믿고 영접하십시요. 그래서 죄 사함 받고 구원받아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는 삶을 사시는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할렐루야! 아멘.
4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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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오병이어의 기적

선한교회 2022. 2. 10. 12:39 설교일 : 2022.2.6.주일오전 성 경 : 요6:1-15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수많은 무리의 사람들이 따랐습니다. 그들 중에는 말씀을 듣고 싶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예수님의 표적을 보려고 따라다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2절). 사실 예수님은 기적을 보여주시기 위함이 아니라 병자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고쳐주셨어요. 마14:14에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수많은 무리들의 허기진 형편을 헤아리신 주님께서는 제자 빌립에게 이들을 어떻게 먹일지를 물으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미 이들을 배불리 먹일 뜻과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빌립은 계산적으로 생각해서 그들을 먹일 방법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때 안드레가 한 소년으로부터 도시락을 가져와 주님께 드렸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축사하시고 무리들에게 나눠주어 먹게 하셨습니다. 비록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이었지만 남자 어른들만 해도 오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열 두 광주리나 남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오늘 말씀은 단지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만을 보여주는 사건이 아닙니다. 일차적으로는 예수님의 신성 즉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되심을 보여주는 표적이지만, 이 사건에는 우리가 예수님에 대해서 알기를 원하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오늘은 그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는 모든 자들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오는 어떤 자든지 긍휼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분입니다. 사실 오늘 주님을 따르던 수많은 사람들 중 대부분이 얼마 후에는 예수님의 곁을 떠납니다. 66절에 보면 “그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마음을 다 아시는 주님이시지만 그래도 그를 따를 때 예수님은 그들 모두의 형편을 헤아려 살펴 주십니다. 가룟 유다도 그가 예수님을 파실 것을 미리 아셨지만 예수님은 그를 끝까지 사랑하시고 오히려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사랑은 차별이 없으십니다. 누구든지 그를 따르는 자들은 전에 그가 어떤 자이었는지, 후에 어떤 사람이 될지 따지지 않으시고 오늘 예수님을 따르면 그분은 그대로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입니다. 성도님들도 예수님처럼 서로 차별하지 않는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누군가를 따돌리고 힘들게 하는 일은 예수님을 따르는 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원의 은혜도 누구든지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그분의 흘리신 피로 죄를 씻어주시고 그분의 의로 우리를 의롭게 해주십니다. 우리 모두 누구에게든지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증거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예수님은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떡이 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일은 예수님에게는 전혀 기적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고자 하시면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창조자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그분의 은혜는 결코 인색하지 않습니다. 풍성하게 베풀어 주십니다. 언제든지 풍성하신 예수님을 의지하고 간구하고 믿으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특히 오늘 베풀어 주신 이 은혜는 떡이나 생선을 주시는 것을 넘어 예수님 자신이 우리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떡이 되심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요6:33-35에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또 요6:47,48에도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십자가에서 우리 위해 죽어 주시므로 믿는 자에게 영생을 얻게 하는 생명의 떡이 되셨습니다. 마20:28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와 내어주신 몸은 대속의 제물이 되어서 믿는 자들의 모든 죄를 씻어주시고, 영원하고 풍성한 생명을 주시는 능력이 됩니다. 요10:10에도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님들도 생명의 떡이 되시는 예수님을 믿고 영생 얻는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할렐루야! 아멘.
4 months ago
선한교회

더 나은 삶을 위하여

설교일 : 2022.1.23.주일오전 성 경 : 요5:1-15 모든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많은 수고들을 합니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업장에서 그리고 여러 유형의 삶의 현장에서 끊임없이 수고하고 노력합니다. 오늘 베데스다 연못가에도 수많은 병자들이 행각을 짓고 누워서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자신의 병이 낫는 것이 소망입니다. 그것만이 그들에게 더 나은 삶을 줄 것이기 때문이지요. 가끔 천사가 내려와 그 못의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그때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된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거기 38년 된 병자가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의 사정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그의 병이 이미 오랜 줄 아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는 말합니다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그는 아마 평생을 거기 누워 있어도 먼저 못에 들어갈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그 사람은 즉시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니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후에 성전에서 예수님은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오늘 말씀에서 더 나은 삶을 위한 두 가지 교훈을 살펴보며 은혜 받겠습니다. 첫째, 진정한 치료자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베데스다’라는 말은 ‘자비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자비는커녕 물이 동할 때 서로 먼저 들어가려는 경쟁심과 이기심이 충만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에게 실제로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치료하시는 능력으로 그의 병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을 치료하시는 치료자이십니다. 육신의 병만이 아니라 마음의 병도, 정신의 병도 영혼의 병도 온전히 치료하시는 의사이시지요. 38년 된 병자를 치료해 주신 예수님은 그에 관해 어떤 것도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의 상태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치료해 주셨습니다. 물이 움직일 때 베데스다 못에 들어가려면 치열한 경쟁과 이기심이 필요하지만, 예수님은 모든 자에게 조건없이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은혜를 구한 사람들은 누구든지 그의 사랑과 자비를 입었고 치료를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날 때 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둘째,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전에서 병이 나은 사람을 다시 만난 예수님은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그 사람을 38년 동안이나 괴롭혔던 병은 바로 죄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는 죄 때문에 병이 들었던 것입니다. 사실 모든 병이 다 죄 때문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도 있고, 마귀가 갖다 주는 병도 있습니다. 때론 하나님께서 나를 연단시키고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병이 들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실제로 죄 때문에 오는 병도 있지요, 이 38년 된 병자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병이 처음 사람들에게 오게 된 것은 죄 때문입니다, 죄가 없을 때는 병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한 이후로 병도 오고 죽음도 오게 되었지요. 많은 경우에 사람들의 죄는 병을 갖다 주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므로 더 나은 삶을 살려면 죄를 범하지 않아야 합니다. 습관처럼 굳어져버린 죄들을 끊어 버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죄는 마귀가 시키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사람들을 멸하고 죽이는 일만 하거든요. 이제부터 성도 여러분들도 죄를 점점 벗어 버리고, 죄를 짓지 않는 생활을 하시길 바랍니다. 그것은 반드시 여러분의 삶을 훨씬 더 나은 삶으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4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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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유월절 만찬

설교일 : 2022.1.16.주일오전 성 경 : 눅22:14-23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고난을 받기 전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의 포도주와 떡을 함께 나누시기를 간절히 원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떡을 가지시고 감사기도 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또 포도주 잔을 나누시면서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인자(예수님)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하시면서 안타까와 하셨습니다. 오늘은 유월절 만찬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예수님이 실제 유월절의 양이심을 제자들이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유월절은 무슨 절기일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간 애굽 나라에서 종살이를 했습니다. 참으로 힘들고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세워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내어 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렸지만 애굽의 바로 왕은 순종하지 않았고 완고하게 고집을 부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열 가지 재앙을 내려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셨습니다. 그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은 장자들과 짐승의 처음 난 것들을 다 죽이시는 재앙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어린 양을 잡아 대문에다 그 피를 바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죽음의 사자가 그 피를 보고 그 집을 넘어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유월’이란 말은 한자어로 ‘담을 넘는다’는 뜻입니다. 어린 양의 피가 그들을 죽음에서 구원하신 것이지요. 그것을 기념하여 지키는 절기가 유월절입니다. 과연 어린 양의 피가 그들을 구원한 것일까요? 짐승의 피가 사람을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어린 양의 피는 앞으로 오실 예수님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피 흘려주심으로 그를 믿는 자들이 죽음에서 구원받고 영생을 얻게 될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즉 유월절의 어린 양은 그림자라면 예수님은 실체가 되는 것이지요. 이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이 땅에서의 마지막 유월절을 지키시며 제자들에게 자신이 실제 유월절의 어린 양이심을 가리켜 주기를 간절히 원하신 것입니다. 고전5:7에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29)라고 증거했습니다. 둘째, 예수님이 주신 떡은 우리 위해 죽으실 그분의 몸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떡을 나눠 주시면서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밤이 지나면 유대인들에게 붙들려 심문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게 됩니다. 이것을 미리 내다 보시면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먹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죽으심은 제자들을 위해 그 몸을 내어 주시는 죽으심인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화목제물로 드려지는 희생제물로서의 죽으심인 것이지요. 그래서 떡을 먹는 것은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 자신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생명이신 그의 살을 먹는 것이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게 됩니다. 셋째, 예수님이 주신 포도주는 우리 위해 흘리실 그분의 피를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포도주를 주시면서 “이것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시게 될 피는 우리의 죄를 위함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실 피는 죄를 씻는 샘물이 되리라고(슥13:1) 하셨습니다. 또 피흘림이 없이는 사함심이 없다고도(히9:22) 했습니다. 즉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죄를 씻어 깨끗게 해 주시는 용서의 보혈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피를 의지하고 회개하는 자는 죄사함을 받는 것이지요. 제자들에게 포도주를 마시라고 할 때 그것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시게 될 보혈을 믿으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흘리신 보혈을 믿는 자는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는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성도님들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깊이 생각하고 믿음으로 성찬에(예수님의 몸과 피에) 참여하는 성도님들이 되길 바랍니다. 할렐루야! 아멘
4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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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신하 가족의 구원

설교일 : 2022.1.9.주일오전 성 경 : 요4:46-54 예수님께서는 여러분 가정의 모든 식구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말씀에도 왕의 신하의 아들의 열병으로 인해서 온 가족이 구원받은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실 아들이 죽을 만큼 힘든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은 온 가족들에게 슬프고 힘든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는 그 아이의 병도 고쳐주시고 온 식구들의 영혼도 구원받게 해 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가버나움에 왕의 신하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의 아들이 열병이 들어서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의 아버지가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오신다는 소문을 듣습니다. 왕의 신하는 약80리(32km)나 되는 먼 길을 마다 않고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셔서 고쳐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고 말씀하셨고 그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돌아갑니다. 도중에 그의 종들을 만나 아이의 열기가 떨어졌다는 얘기를 들었고, 그 때가 바로 예수님께서 살아 있다고 말씀하신 그 때인 것을 알게 됩니다. 아이는 살았고 온 가족들은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첫째, 가정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예수님께 기도하십시요 왕의 신하의 가정에는 아들이 열병이 들어 죽을 지경에 있는 일이 생겼습니다. 온 가족이 다 힘든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때 왕의 신하는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믿고 간구했습니다. 여러분!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요. 예수님께서는 내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의 가정에는 어떤 힘든 일들이 있습니까? 예수님께로 그 문제를 가져가세요. 예수님께서는 마11:28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왕의 신하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알았지만 우리들은 성경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분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기뻐하시면 여러분의 어려운 일들을 다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말씀은 믿고 그대로 순종하십시요 왕의 신하는 자기 집에 내려오셔서 아이의 병을 고쳐달라고 했지만,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 그냥 네 아들이 살아 있다고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대로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 시간에 예수님의 말씀대로 아이의 열기가 떨어졌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죄사함 받고, 예수님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에 들어갑니다. 그대로 믿는 자에게는 반드시 그런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히11:1에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했습니다. 셋째, 기적보다 귀한 것은 믿고 구원 받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신 것은 아이의 병보다도 그 가족들의 구원이었을 것입니다. 그 아이의 병은 가족들에게 잠시 힘들게는 했지만 영혼이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됨은 얼마나 다행스럽고 복된 일인지요. 아마 아이가 아프지 않았다면 왕의 신하는 예수님을 찾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왕의 신하는 돈도 많고, 사회적으로 신분도 높으니 그럴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아들의 병이 예수님을 찾게 했고, 온 가족이 구원받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권능을 주시면서 전도하러 보내십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항복하더라고 기쁨으로 보고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눅10:20)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믿고 기뻐하십시요. 어떤 기적보다 귀한 일입니다.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날 위해 십자가에 죽어주신 예수님의 은혜에 항상 감사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아직 믿지 않는 가족들의 구원을 위해 끝까지 기도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할렐루야! 아멘.
4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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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사람

설교일 : 2022.1.2.신년주일 성 경 : 시1:1-6 금년에 성도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기원합니다.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서로 복을 비는 인사들을 합니다. 아름다운 일입니다. 상대방에게 복을 빌어 주는 일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이 복을 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일입니다. 성경에는 복 있는 사람이 복을 받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일까요? 첫째,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는 사람입니다 악인들의 꾀란 나쁜 생각을 가리킵니다. 나쁜 생각을 따라가지 않아야 복 있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쁜 생각, 못된 생각은 나쁜 행동, 못된 행동을 하게 만듭니다. 나쁜 생각들은 때로 마귀가 넣어주기도 합니다.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아 먹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목매달아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창자가 빠져나와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받은 돈은 한 푼도 써 보지 못하고 말이지요. 그런데 성경에는 마귀가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그에게 넣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나쁜 생각들이 들어올 때 마음 속으로 ‘사탄아 물러가라’ 하고 물리쳐야 복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금년에는 좋은 생각, 아름다운 생각만 내 마음이나 머리 속에 머물게 해서 복 있는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는 사람입니다 죄를 짓는 일에 함께하지 말아야 복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언제든지 죄를 짓게 만드는 유혹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유혹을 단호히 뿌리치지 못하고 죄를 짓게 되는 것이 죄인들의 길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죄값은 사망이라고 했기 때문에 죄에는 반드시 심판이 따라옵니다. 죄인들과 함께 하면 복은 커녕 멸망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죄를 멀리하고 죄를 미워하는 삶을 사는 자입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금년에 죄는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이라도 단호하게 물리쳐서 복 있는 자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셋째,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입니다 오만하다는 것은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하며 자기중심으로 살던가 하나님을 대적하며 사는 삶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숨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오만하거나 거만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한 삶은 어떤 삶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경외한다는 말은 하나님께 예배하며 그의 말씀을 순종하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금년에도 예배를 빠지지 않고, 힘있게 찬송하고, 늘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들이 될 때 복 있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넷째,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자입니다. 신구약 성경말씀을 사랑하고 늘 곁에 두고 읽으며 그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을 기뻐하는 자입니다. 여러분들은 작년에 성경을 얼마나 읽으셨나요? 금년에도 결심하고 성경을 많이 읽으시기 바랍니다. 또 외우고 그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은 ‘복 있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귀하게 사용하신 사람들은 다 성경의 사람들입니다.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말씀을 생명처럼 붙들고 순종하며 살아간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는 없지만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과 미워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금년에 성경을 사랑하고 즐거워하고 많이 읽고 묵상하고 순종하므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는 복 있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또한 의인과 악인의 실상과 운명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위와 같이 사는 복 있는 사람을 ‘의인’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의인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 것 같이 그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고 증거합니다. 반면에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고 악인들은 결코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할 것이라고 증거합니다. 우리 인생에서 바람은 의인이나 악인 모두에게 부어옵니다. 그러나 의인은 흔들리지 않아서 결국 그 모든 것에도 형통케 되지만 악인은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또한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지만 악인들의 길은 망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금년에 말씀에 제시된 복 있는 자, 곧 의인의 길을 걸어가므로 하나님께 인정받고 형통케 되며 복 있는 자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4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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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인생

설교일 : 2021.12.26.주일 성 경 : 고전15:9-10 사도 바울은 그의 인생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평생 빚을 갚는 심정으로 살았습니다. 은혜를 아는 일과 은혜를 갚는 일은 인생에서 너무나도 귀한 일입니다. 은혜를 아는 인생! 바울의 삶에서 고백되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는 동일하게 우리들에게도 해당되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잊고 있거나 아니면 알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 있을 수 있습니다. 거의 저물어 가는 년 말의 시점에서 우리들에게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한 번 상고하며 한 해를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세 가지 자신에게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죄인을 용서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잡아서 옥에 보내기도 하고 죽게 하는 일에 적극 동참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잡아서 넘기기 위해 혈기 등등하게 다메섹으로 가던 사울(바울의 이전이름)에게 부활하신 주님은 나타나셨고, 만나주셨습니다. 그는 금식하며 회개했고 죄사함 받고, 성령을 받아 새로운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시 나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박해하던 그가 이후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복음을 전하는 영광스러운 전도자로 변화 되었습니다. 만일 주님께서 그를 만나주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두었더라면 이전의 인생을 그대로 살아갔을 것이고 죄만 짓다가 영원한 지옥의 불못에서 영생을 보내야만 했을 것입니다. 죄인 된 자신을 만나주시고 용서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그는 평생 감사합니다. 우리들에게도 주님께서 먼저 찾아오셔서 믿음을 주시고, 죄를 사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천국의 백성삼아 주심을 알고 감사해야겠습니다. 둘째, 사도로 불러주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자신까지도 만나주셨다고 하면서 겸손히 감사하고 있습니다. 엡3:8에서는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 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은혜를 주셨다고 했으며, 딤전1:15에서는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잘 것 없는 자신을 불러서 ‘사도’라는 직분까지 맡겨 주셨으니 그 은혜를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까지도 부르셔서 ‘성도’라는 거룩한 이름을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분에게는 집사로, 권사로, 장로로, 교사로, 각종의 섬김의 일들을 맡겨주셨습니다. 죄 사함 받은 것만 해도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입었는데, 직분까지 주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시니 얼마나 놀라운 은총인지요! 바울은 감당하지 못할 은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9절하) 우리가 받은 거룩한 직분을 더욱 귀히 여기고 충성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항상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바울은 죄인 된 자신을 불러서 죄를 사해주시고 사도라 불러주신 그 은혜가 헛되지 않게 하려고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10절중) 진실로 자신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의 모습입니다. 진심으로 은혜를 아는 자는 삶에서 그 은혜의 열매들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나 공로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은 커녕 아마도 교만한 삶의 치부를 들러내고 말 것입니다. 이렇듯 진심으로 은혜를 안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아는 바울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10절입니다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그는 그 수고하는 자체도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심으로 가능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항상 함께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 그는 그 사실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자신의 의나 공로가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함께하심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이 항상 함께하심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마28:20에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십니다. 마1:23에는 “그(예수님)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고 했습니다. 금년에도 함께 해 주신 하나님은 내년에도 후년에도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약속 붙들고 한 해를 감사하고 다가오는 새 해를 소망하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아멘.
4 months ago
선한교회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설교일 : 2021.12.19.주일 성 경 : 요3:22-36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에게 와서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로 간다고 보고를 합니다. 내심 그럴 수는 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품고서 하는 말이겠지요.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어떻게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시기와 불만도 품은 것 같습니다. 그때 요한이 제자들에게 한 대답은 오늘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이 가져야 할 바른 자세를 가르쳐 줍니다. 그러면서 요한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그를 통한 영생의 문제를 다시 한 번 확실하게 증거합니다. 첫째,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의 바른 자세입니다 1)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27절). 그러므로 나보다 낫다고 해서 시기하거나 질투해서는 안 됩니다. 2) 자신의 사명과 역할의 한계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28절). 내게 주신 사명에만 충성해야지 시기심으로 남의 사역을 침범해선 안 됩니다. 3) 주님의 기쁨을 나의 기쁨으로 삼아야 합니다(29절). 나의 영광을 취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4) 주님은 점점 높이고 자신은 점점 죽어져야 합니다(30절). 나를 드러내려고 하면 주님이 가리워집니다. 둘째, 그리스도에 대한 세례요한의 증거입니다 1)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오신 분으로 만물 위에 계십니다(31절). 땅에서 난 자는 땅에 속한 것을 말하나 예수님은 하늘에서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시는 분입니다. 2) 예수님의 증언을 받는 자들은 하나님을 참되시다고 하는 자들이며 성령으로 인친 자들입니다(32-33절). 3)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로 하나님의 말씀을 하시는 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한량없이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34절). 구약시대 선지자들에게도 성령이 부어졌지만 일시적이고 한정적으로 부어졌습니다. 그때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한량없이 부어주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모든 말이나 사역이 전부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4) 예수님은 모든 만물의 주인이십니다(35절). 하나님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습니다. 마28:18에도 보면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고 하셨습니다. 빌2:9,10에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요5:22에는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심판까지도 예수님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구원과 심판의 권세를 가지신 분이신 것입니다. 그분은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셋째,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습니다 36절에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하십니다. 믿는다는 것은 순종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영생이 있지만, 믿지 않는 자에게는 영생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다고 하십니다. 로마서에서는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부터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롬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경건하지 않다는 말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불의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행하는 모든 일들을 말합니다. 불경건과 불의에 대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있음을 선포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아닌 영생을 얻게 됩니다. 영생이란 무엇일까요? 글자대로는 단순히 ‘영원히 사는 것’ 정도라고 이해할 수 있겠지만 좀 더 확실히 표현하면 ‘영원한 생명’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제 성경적 의미에서의 영생의 뜻을 세 가지로 말할 수 있겠습니다. 1) 죽었던 영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중생한 새 생명을 말합니다. 허물과 죄로 죽어서 하나님과 단절되고 원수 되었던 자의 영이 예수님을 영접하므로 다시 살아나서 하나님과 교통하고 화목한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엡2:1에 보면 “그는(예수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했습니다. 롬5:10에는 “우리가 원수되었을 때(하나님과)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이라고 했습니다. 롬5:1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고 했습니다. 2) 중생한 영적 새생명이 날마다 새롭게 자라나는 것입니다. 육적인 생명도 자라듯이 영적인 생명도 자라납니다.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일이고 성화를 이루는 일입니다. 3) 이 후에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그 아들을 순종치 않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영생의 삶을 사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아멘.
4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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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생자를 주셨으니

설교일 : 2021.12.12.주일 성 경 : 요3:16-21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만 했으며, 하나님께서는 왜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을까요? 첫째, 세상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내어 주시기까지 세상을 사랑하십니다. ‘세상’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떠난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처음 사람 아담의 범죄 이후로 모든 사람은 죄 가운데 빠졌습니다. 롬3:23에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했습니다. 사64:6에는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라고 했습니다. 죄에 빠진 인간은 선행이나, 철학이나, 고행 혹은 종교 등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도달하려고 해 보지만 불가능합니다. 창6:5에는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라고 했으며, 창8:21에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욕심의 지배를 받고 삽니다. 약1:15에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아름답게 지으셨지만 인간은 꾀를 내었고, 사단의 미혹을 받아 죄에 빠져 영원한 지옥 형벌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죄에 빠진 인간은 스스로를 결코 구원할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는 죄 없으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그에게 세상의 죄를 담당하게 하셨습니다. 여기에 놀라우신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요일4:9-10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했습니다. 롬5:8에도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십시오. 이미 정죄 받은 모든 인간에게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의 사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를 영접하며 그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바울은 갈3:20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우리도 이런 고백과 함께 남은 생애를 사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16절에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고, 17절에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인간들은 죄로 인해 이미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습니다. 그 정죄는 영원한 지옥의 형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사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 세상 사람들의 죄값을 대신 치르게 하셨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심판에서 구원받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를 믿는 자마다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16절에 “그를 믿는 자마다”라고 했고, 18절에도 “그를 믿는 자는”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대신 형벌을 받으셨지만 그 효력 즉 심판에서 구원을 받는 자는 오직 ‘그를 믿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를 믿지 않는 자는 여전히 심판 아래 있는 것입니다. 18절에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를 구원의 자리로 초청하시고 부르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인정하고 회개하며 예수님을 죄로부터 나를 구원해 주실 구주로 믿고 영접하면 누구든지 심판에서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의 하나님께서 예비해 주신 유일한 구원의 길이요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입니다. 행4:12에는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했고, 마1:21에는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죄를 사함 받지 못한 죄인은 사후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못인 지옥의 형벌을 피할 수가 없지만, 예수님을 믿고 죄사함을 받은 의인은 천국에서 영원을 누리게 된다고 성경은 분명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할렐루야! 아멘.
4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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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을 얻으려면

설교일 : 2021.12.5.주일 성 경 : 요3:1-15 어느 날 밤에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는 바리새인이요 관원이요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유대인의 지도자입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에게서 나타나는 표적은 하나님이 함께하심이라고 하면서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안다고 말합니다. 그가 무엇 때문에 왔는지 그의 마음을 이미 알고 계시는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니고데모는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늙었는데 다시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시면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하십니다. 거듭나는 것은 육이 아닌 영적 출생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그 소리는 들리는 것처럼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다‘고도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자신은 하늘에서 내려 온 자라고 말씀하시면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예수님)도 들려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것은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도 하십니다. 이제 말씀을 통해 영생 얻는 길, 하나님 나라(천국) 에 들어가는 길을 상고하며 은혜 받으시겠습니다. 첫째, 영생을 얻으려면 거듭나야 합니다 3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셨는데, 볼 수 없다는 말은 들어갈 수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거듭난다’는 말은 다시 태어난다는 뜻입니다. 그래야 천국에 들어가고 영생을 얻는다는 말이지요. 엡2:1에 보면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했습니다. 죄 때문에 완전히 죽어 있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 완전히 끊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모든 사람의 영혼은 죽어 있습니다. 영혼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통이 완전히 끊어진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거듭남은 영적인 출생이라고 말씀하십니다(6절) 죄가 없던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항상 교통하며 살았습니다. 에덴동산에 죄가 들어오므로 하나님과 단절되었는데 이것이 영적인 죽음의 상태인 것입니다. 이후로 모든 사람은 영혼이 죽은 상태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 수도 찾을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영적인 출생이 있어야 합니다. 육신은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오지만 영적인 출생은 위로부터,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요1:13절에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둘째, 어떻게 거듭날 수 있습니까 5절에 보면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물’은 씻어내는 일을 합니다. 죄인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죄 씻음을 받아야만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죄인들의 모든 죄를 씻는 능력이 됩니다. 히9:22에 “율법에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하셨고 히9:12에는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물’은 속죄의 피를 의미합니다. 또한 ‘물’은 성경 여러 곳에서 ‘말씀’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가 죄를 씻는 속죄의 보혈임을 믿을 수 있습니다. 다음에 ‘성령’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성령께서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속죄와 구원의 믿음을 우리 안에 넣어주셔서 거듭나게 하십니다. 거듭나게 하시는 역사는 성령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육신의 몸은 모태에서 나오지만 영혼의 거듭남은 성령으로 되어지는 역사입니다. 셋째, 거듭난 증거는 무엇입니까 영혼은 보이지 않습니다. 내가 실제로 거듭났는지, 언제 거듭났는지 잘 모를 수가 있습니다. 8절에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고 했습니다. 거듭난 증거, 열매를 보고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1) 회개하게 됩니다. 죄에서 씻음 받았으니 하나님을 향해 이제 죄를 회개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신앙을 고백하게 됩니다. 3)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세상에만 소망을 두고 살던 사람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천국을 바라보고 영적인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께 대해 죽었던 생명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향해 살아났으니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향하게 됩니다. 거듭남의 은혜를 주시기 위해 계획하신 하나님의 방법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 주신 방법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위해 기꺼이 십자가에서 피 흘리셨고, 이제 성령이 오셔서 구원받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적용시키시므로 거듭나고 영생 얻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4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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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을 깨끗하게 하시다

설교일 : 2021.11.28.주일 성 경 : 요2:13-25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에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해서 흩어져 있는 많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모여들고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성전에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전 안에서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광경을 목격하셨습니다. 거룩해야 할 성전 뜰에서 많은 장사꾼들이 판을 벌리고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제사에 제물로 드려질 짐승들 곧 소, 양, 비둘기 등을 팔고 있었습니다. 성전에서 쓰는 돈으로 바꾸어 주는 환전상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상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거룩한 집이 장사하는 곳으로 쓰이고 있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습니까. 예수님은 의로운 마음에서 올라오는 거룩한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셨습니다.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셨습니다.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고 외치셨습니다. 그러면서 이르시기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예수님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십 육년 동안에 걸쳐 지은 성전을 네가 어떻게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영적으로 어두우니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첫째,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곳입니다 구약시대의 성전이나, 신약시대인 오늘날의 교회는 모두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곳입니다. 장사하는 곳이 아닙니다. 마21:13절에는 예수님께서 구약성경의 말씀을 들어서 말씀하시기를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돈벌이를 하려고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을 이용하고, 하나님께 제사 드리러 온 성도들을 이용해서 장사를 하고 있으니 마치 강도들과 같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성도들이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듣고, 서로 예수님 안에서 믿음의 교제를 나누고, 섬기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입니다. 사사로운 이익이나 목적을 위해서 쓰여서는 절대 안 되는 거룩하고 경건한 곳입니다. 둘째, 예배는 의식보다 내용이 중요합니다 구약시대에는 소나 양이나 비둘기를 제물로 바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깨끗하고 흠 없는 짐승을 잡아서 제단에 올리고 불에 태워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제물의 피는 성전이나 제단에 뿌려졌습니다. 이것을 제사의식이라고 합니다. 제사의식에 쓰여지는 기구들도 많았는데, 번제단, 물대야, 떡상, 촛대, 향단, 속죄소 등이 있었습니다. 성전이 사람들의 욕심이나 탐욕으로 강도의 소굴이 되고, 돈벌이를 하는 장소가 되어도 의식은 그럴듯하게 화려하게만 드리면 된다는 생각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거룩하고 진실하고 영적인 예배를 받으십니다. 요4:24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셋째, 교회의 중심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예수님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앞으로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셔서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삼일 만에 살아나셔서 우리의 의가 되어 주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하나님과 화목시키는 화목제물이 되려고 오셨습니다. 구약의 모든 제사제도와 제물되는 짐승들은 예수님과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사역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이런 모든 제사제도와 기구들과 제물들은 오실 예수님을 나타낸다고 해서 ‘예표’라고 합니다. 실체는 예수님이고 그런 것들은 그림자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와 부활을 이루시므로 구약시대의 예표적이고 낡은 의식제사와 성전시대는 끝나고, 새로운 신약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구약시대나, 신약시대인 오늘날에나 성전과 모든 교회의 중심은 예수님입니다. 구약시대는 오실 예수님이, 신약에는 오신 예수님이 중심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우리 죄가 사해졌고, 구원받아 천국 백성됨을 확실히 믿고 고백하는 자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십자가와 부활, 이것이 바로 교회의 기초요, 중심입니다. 항상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확실히 믿고, 감사함으로 예배드리고, 교회를 소중히 여기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
4 months ago
선한교회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설교일 : 2021.11.21.추수감사절 성 경 : 골1:3-6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를 위해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사도 바울도 골로새교회의 성도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항상 기도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3절에 보면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합니다. 무엇이 감사한 것일까요? 우리들에게도 이런 감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감사했습니다 성도들에게 있는 ‘믿음’에 대해서 감사했습니다. 믿음은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믿음이라고 했나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얻게 되는 은혜들이 많습니다. 죄사함, 구원, 하나님의 자녀됨, 의롭다함, 영생, 천국, 부활을 얻게 됩니다. 반대로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죄사함도 없고, 구원도 없고, 영생도 없고, 마귀만 따라 죄 가운데 살다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불에 떨어지고 맙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얼마나 귀하고 영광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믿음은 내가 스스로 믿어서 갖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열어주셔서 예수님을 믿게 해 주셔야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엡2:8에 보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지구상에는 이러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 갖지 못한 사람들, 두 종류의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 속해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는 나에게도 이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둘째,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감사했습니다 골로새교회 성도들이 서로 사랑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사도 바울은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은 예수님이 주신 새 계명입니다. 요13:34에 보면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사로 사랑하라”고 했어요. 요15:12에도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순종하면 복을 받습니다. 여러분도 사랑생활을 하십시요. 서로 사랑하는 일을 실천하십시요.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다투고 싸우는 생활에는 하나님의 은혜도 축복도 없습니다. 참 교회는 하나님의 바른 말씀이 선포되고, 바른 신앙을 고백하는 교회입니다. 특히 바른 말씀을 실천하는 교회 즉 서로 사랑하는 교회가 참 교회입니다. 우리들도 서로 상대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생활을 통해 참교회를 세워나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감사했습니다 하늘에 쌓아 둔 소망이란 무엇을 말할까요? 예 천국과 부활, 영생 등 영광스러운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은 세상 것들이 아닙니다, 그리고 잠시 있다가 없어지고 사라지는 것들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모두 하늘에 영원히 영광스러운 것들을 쌓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것들을 소망으로 삼고 살아가는 자들은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다가 어려움을 만나도 얼마든지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롬8:18에 보면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나이가 많이 들어 세상을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바라보면서 기뻐했습니다. 딤후4:7-8에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미국의 청교도신앙인들은 고난의 때에도 수확을 거두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로 예배드리고 음식을 나누며 기뻐했습니다. 이것이 추수감사절의 시작이잖아요.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광야에서 40년 동안 많은 고생을 했지만 함께해 주시고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해마다 초막절을 지켰습니다. 여러분 우리들도 지금은 전염병으로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아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특히 우리에게 주신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성도들을 향한 사랑과,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주신 하나님께 항상 감사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4 months ago
선한교회

예수님의 처음 표적

설교일 : 2021.11.14.주일 성 경 : 요2:1-12 갈릴리 가나에서 결혼잔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도 초청을 받았습니다. 잔치가 한창인데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아들 예수에게 이 사실을 알립니다. 그리고 하인들에게는 예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 곳에는 율법의 정결예식을 따라 손을 씻는 물 항아리 여섯 개가 놓여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인들에게 물을 떠서 그 항아리를 채우라고 하십니다. 그리고는 떠서 잔치를 주관하는 연회장에게 갖다주라고 하십니다. 하인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했습니다. 물맛을 본 연회장은 깜짝 놀랐습니다. 최고의 포도주 맛이었습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신 예수님께서 처음 행하신 표적입니다. 본문 11절에 보면 이 영광을 보고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었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오늘 말씀에서 세 가지 교훈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기적은 믿고 순종하는 곳에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께서 능력으로 이 잔칫집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하인들에게 예수님께서 시키는대로 하라고 지시 합니다. 하인들은 그대로 순종했고 그 결과 놀라운 기적,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곳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여호수아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서 여리고성을 돌 때 그 든든한 성이 무너져 내리는 기적을 보았습니다(수6:1-21). 나아만 장군은 선지자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몸을 씻을 때 그 몸에 들었던 문둥병이 깨끗이 치료받는 기적을 경험합니다(왕하5:8-14). 날 때부터 소경된 자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실로암 못에 가서 눈을 씻었더니 그 눈이 환히 떠지는 기적을 봅니다(요9:1-11). 문둥병자 열 명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러 가는 도중에 그 병이 깨끗이 나았습니다(눅17:11-19). 오늘날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 주십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며 믿고 순종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예수님을 영접하면 누구든지 새롭게 변화됩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것은 놀라운 변화입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에 따라 정결예식을 행하는 항아리를 사용하신 것은 사람들이 새롭게 변화되는 것은 율법을 행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서 된다는 것을 나타내주는 것입니다. 고후5:17에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요1:12에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참으로 놀라운 변화입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것은 우선 맛이 달라졌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사는 자가 인생의 맛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에게로부터 기쁨과 평강과 은혜가 내려오고 채워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가치도 달집니다. 항아리에 있던 물은 그저 손이나 씻는 물이었지만 포도주는 귀한 자의 상에도 올려지고 누구에게나 필요한 요긴한 것으로 바뀐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백성이 되고, 영생을 얻게 되니 얼마나 놀라운 변화인지요. 예수님 없으면 마귀에게 끌려 죄만 짓다가 지옥 불에 떨어지고 말 사람이었는데 말입니다. 색깔도 달라졌습니다. 손 씻는 물은 흐릿하고 뿌옇지만 포도주는 색깔이 예쁘고 맑고 선명하잖아요. 진실로 예수님 안에 있으면 얼굴도 달라지고, 성품도 달라지고, 모든 것이 변화가 됩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셋째,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주는 표적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이신데, 예수님께서 물을 다스리셔서 초자연적으로 포도주가 되게 하신 사건은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주시는 것입니다. 앞으로 계속 예수님께서는 바람과 물결을 다스리기도 하시고, 마귀를 명하여 쫓아내시기도 하시며, 병든 자를 고쳐주시는 등등의 놀라운 기적들을 많이 행하시게 됩니다. 이는 모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나타내시는 일들입니다. 그 일들을 보고 예수님을 믿으라는 것이지요. 오늘 말씀에도 이 영광을 보고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11절). 성도님들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4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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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처음 제자들

설교일 : 2021.11.7.주일 성 경 : 요1:35-51 예수님의 제자 열 두명 중에 처음 다섯 명을 부르시는 말씀입니다. 먼저 세례요한의 제자였던 안드레와 요한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그분이 메시야임을 깨닫게 된 안드레는 바로 가서 시몬을 데려옵니다. 시몬은 후에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초대교회의 기둥과 같은 사도가 됩니다. 빌립은 예수님이 친히 불러주십니다. “나를 따르라” 하실 때에 그는 즉시 따릅니다. 빌립도 예수님이 모세와 선지자들이 오리라고 한 그 분임을 깨닫고 바로 나다나엘에게 가서 전합니다. 그러나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하면서 의심합니다. 그는 그렇게 크신 분이 너무나도 작고 초라한 나사렛 같은 시골에서 나오실 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와서 보라’는 빌립의 말에 예수님께로 왔다가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중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이스라엘의 임금’이심을 고백하게 됩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놀라운 축복의 말씀을 주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그들은 제자가 되어 예수님을 따르면서 실제로 이렇게 놀라운 일들을 수도 없이 많이 보고 경험하게 됩니다. 첫째, 예수님은 자기를 따를 제자들을 부르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주님은 열 두명의 제자들을 부르시고 훈련시키셔서 오늘날 수많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세우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배반한 가룟유다를 제외한 당시의 모든 제자들은 이미 죽어 천국에 가 있지만, 오늘 예수 믿고 구원 받은 모든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을 믿으니 예수님의 제자인 것입니다. 마28:19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로 삼아’ 이 말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모든 자들을 가리킵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제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게 되는 길은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부모님을 통해서, 혹은 누군가의 전도를 받고, 혹은 스스로 등등. 어떤 분들은 큰 병에 걸렸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치료받고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도 있습니다, 큰 사고를 당했다가 예수님을 만난 사람도 있습니다. 제자들도 세례요한이 알려줘서 예수님을 따른 제자들도 있고, 전도 받고 온 제자도 있고, 예수님이 직접 부른 제자도 있잖아요. 오늘도 예수님은 여러 나라. 여러 민족 세계 곳곳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응답해서 예수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모두 다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나를 제자로 불러주신 예수님께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 받은 자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다섯 명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막3:14에 보면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과 함께 있는 자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시고 승천하셨는데 지금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과 함께 하고 예수님을 따를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가시면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님은 지금도 믿는 모든 자들의 마음속에 오셔서 항상 함께 하십니다. 성령은 곧 예수님의 영입니다. 또 예수님의 모든 말씀이 성경입니다. 구약은 오실 예수님을, 신약은 오신 예수님에 대한 말씀으로 가득합니다. 오늘날은 성령 안에서 그리고 성경말씀을 따르는 것이 곧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이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여러분들도 성령으로, 말씀을 따라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셋째,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예수님을 전하는 자들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친구들에게, 예수님을 의심하는 친구들에게도 말입니다. ‘와서 보라’고 하면서 예수님에게로 데려와서 만나게 했습니다. 그때 그들이 예수님을 바로 깨닫게 되었고, 의심도 풀리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들도 누구든지 예수님께로 데려와 구원받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신 것은 또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다시 막3:14에 보면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예 전도하게 하시려고 부르셨다고 했습니다. 막16:15에도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게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했고, 행1:8에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꼭 기억해야겠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들을 제자로 부르신 것은 또 다른 제자를 삼으라는 명령이 담겨져 있는 부르심인 것을 말입니다.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전도하는 삶을 살아야하겠습니다. 그때 우리를 제자로 부르신 예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고 축복하실 것입니다. 아멘!
4 months ago
선한교회

하나님의 어린 양

설교일 : 2021.10.31.주일 성 경 : 요1:29-34 예수님께서 나아오시는 것을 보고 세례 요한이 사람들에게 외쳤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그러면서 자기도 예수님을 알지 못했으나 자기에게 물로 세례를 주라고 하신 분, 바로 하나님이 알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또 누구에게든지 성령이 내려서 그 위에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분이 바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분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라고 알려 주셨다고 했습니다. 요한이 요단강에서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풀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서 예수님 위에 머문 것을 보았습니다. 하늘에서 나오는 음성도 들었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본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키면서 저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무리들에게 확신 있게 외쳤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라고 알렸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이 말은 무슨 말일까요? 이 말은 예수님이 앞으로 무슨 일을 하실 것인지를 나타내주고 있는 아주 중요한 말입니다. 우리 신앙의 시금석이 되는 핵심이 담겨 있는 말입니다. 첫째,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평생에 죄를 지으며 살아갑니다 아담 이후로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은 죄를 지으며 살아갑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죄도 있지만, 머리나 마음속으로 짓는 죄도 있습니다. 천국은 아주 거룩한 곳입니다. 죄가 손톱만큼만 있어도 절대 들어갈 수 없는 곳입니다. 그래서 롬3:23에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선하고 아름답게 만드셨는데, 뱀의 유혹을 받아 죄에 빠진 인간은 부패하고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죄를 짓는 일에는 익숙하지만 의롭고 선한 일은 좀처럼 할 줄 모르는 죄악된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창6:5에는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라고 했고, 창8:21에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형벌을 받을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형벌의 장소는 여러분이 잘 아는대로 바로 ‘지옥’입니다. 그렇지만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죄인들이 구원받을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바로 독생자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서 그에게 형벌을 대신 쏟아 부으시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의 죄는 용서하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이제 유일하게 예수님을 통해 죄사함과 구원받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려고 오셨습니다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지시기 위해서는 사람이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사람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시지만 죄는 없으신 분이십니다. 롬6:23에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요”라고 했습니다. 사망은 죄값으로 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니 사망과 관계가 없습니다. 죽으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 말이 바로 오늘 말씀대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죄를 사함 받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우리들의 ‘죄’가 되셔서 대신 죽으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죄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왜요? 나의 죄가 예수님에게로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여러분의 죄도 예수님에게로 넘어가고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죄사함을 받은 자로, 죄가 없는 자로 서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은 죄사함을 위한 속죄 제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는 죄를 지으면 양이나 소 혹은 비둘기를 제물로 바쳐서 죄 사함을 받게 했습니다. 죄인이 제물을 제사장에게 가져와서 죽입니다. 그리고 제단에 올려놓고 불에 태웠습니다. 죄인이 죽어야하는데 제물이 대신 죽는 것입니다. 이때 제물로 드려지는 짐승을 속죄제물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구약시대의 제물은 완전하고 영원하지 않습니다. 죄를 지을 때마다 또 다른 짐승을 가져가서 제사를 드려야하니까요. 사실 이 제물은 앞으로 오실 예수님을 나타내고 있는 거였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이 오셔서 완전하고 영원한 속죄제물의 양이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어주심으로 한 번에 그리고 영원히 우리들의 죄를 사해주시는 속죄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말은 바로 예수님이 속죄제물이 되심을 나타내고 있는 말입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이 일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습니다. 이제 그를 믿는 모든 자들은 죄사함 받고 하나님 앞에 죄없는 자로 서게 되어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아멘!
4 months ago
선한교회

요한의 그리스도 증거

설교일 : 2021.10.24.주일 성 경 : 요1:15-18 지난 주 세례요한의 자기증거에 대해서 설교했습니다. 요한은 자신의 존재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예수는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자이신 반면, 자기는 회개케 하는 물로 세례를 베푸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예수님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치 못할 자라고 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님과의 관계에 있습니다.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이루어질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성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하나씩 하나씩 씻겨 주셨습니다. 베드로의 차례가 오자 그는 단호히 만류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종이 주인의 발을, 제자가 스승의 발을 씻기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발을 씻기지 않으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오늘 우리도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자기를 깨닫고 사는 삶이 참으로 복된 삶이요, 영생의 삶입니다. 본문에서는 세례요한이 자신의 존재의 이유이며 목적이며 가치가 되시는 예수님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세 가지로 외치는 그의 증언을 상고하면서 은혜 받겠습니다. 1. 먼저 계신 분(선재하신 그리스도) (15절) 15절에서 요한이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예수님은 요한보다 육 개월 나중에 오십니다. 이에 대해 요한은 출생적으로는 예수님이 자기보다 나중이지만 본래적으로는 예수님이 자기보다 앞서 존재하신 분이시라고 증언합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신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요1:1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하셨고 요1:14에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하셨습니다. 태초부터 말씀으로 계신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오신 분,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뜻입니다. 미5:2에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예수님의 근본이 상고에 있고 영원에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8장에서 예수님께서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시자 유대인들이 “네가 아직 오십도 못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고 반문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이천 년 전에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들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은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 (16-17절) ‘은혜’는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모든 사랑의 선물을 말합니다. 특히 구속에 관한 모든 일들, 즉 죄사함, 칭의, 양자, 성화, 평강, 기쁨, 영화, 천국, 영생 등을 가리킵니다. 이런 모든 은혜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분에게는 이런 은혜들이 충만하십니다. 왜냐하면 그 분 자신이 이 은혜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은 이런 은혜들을 믿는 자들에게 흘러 보내주시는 근원이 됩니다. 세상에서 줄 수도, 얻을 수도 없는 은혜들입니다. ‘진리’란 어떤 시대나, 지역이나, 인종이나, 환경 등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이치나 도리를 가리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고 ‘복음’을 가리킵니다.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이요, 복음이십니다. 세상의 법이나 이치는 시대나 사람 혹은 환경에 따라 바뀌기도 하고 변하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이 없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구원받는 구속의 도리는 영원토록 동일합니다. 예수님은 진리이시고 그에게서는 진리가 충만하게 훌러 나옵니다. 히13:8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말씀하십니다. 3. 독생하신 하나님 (18절)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누구도 그분을 볼 수는 없습니다(요4:24). 또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시고 역사하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을 볼 수 있을까요? 세례요한은 하나님을 보는 방법이 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보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이 나타나셨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18절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예수님의 제자 빌립이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고 하셨고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다”고 하셨습니다(요14:8-10). 요10:30에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도 하셨습니다. 바로 예수님에게 나타나신 능력이 하나님의 능력이고, 예수님에게서 나타나신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이고, 예수님에게서 나타나신 성품이 바로 하나님의 성품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면 하나님을 본 것이고, 예수님을 닮아가면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기도 하고 만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이 ‘임마누엘’입니다 그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마1:23). 하나님은 사람들이 볼 수 없게 존재하시는 분이시지만(딤전6:16), 그의 독생자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심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4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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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 요한의 자기증거  

설교일 : 2021.10.17.주일 성 경 : 요1:19-28 구약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 만에 광야에 등장한 세례요한, 그는 자기를 증거하고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그는 자기를 바로 알고 자기의 사명을 바로 깨달은 자입니다. 자기를 바로 아는 일이 우리의 인생에서 참으로 중요합니다. 나는 어디로부터 와서, 무엇을 위해 살다가,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모든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다가, 마지막에 하나님 앞에 서야 할 존재로 지음 받았습니다. 히9:27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칼빈은 기독교강요 제1권에서 바르고 견고한 지혜는 두 지식으로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참되고 건전한 지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인간을 아는 지식이다...하나님을 먼저 묵상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한 분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존재하기 때문이다...인간은 먼저 하나님의 얼굴을 묵상하지 않고서는 인간에 대한 참된 지식을 얻을 수 없다. 자신의 부패를 인정하기 전에는 항상 자기 의가 나타나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본문은 세례요한의 자기증거 세 가지를 말씀합니다. 첫째,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입니다 23절에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그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고 합니다. ‘소리’는 생각이나 의미를 남기고는 사라지는 존재입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소리를 내면 ‘사랑한다’는 의미만 남기고 ‘소리’는 없어지는 것입니다. 소금이 짠 맛을 내고는 녹아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이 세상에 나타내고 자기는 없어지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 자신과 사명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는 ‘주의 길을 곧게 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앞으로 오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고 준비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준비합니까? 말라기 선지자 이후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므로 사람들은 어두움과 죄악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지만, 그들의 상태는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할 상태가 되어있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상태 특히 마음 상태를 앞서 준비시키는 일을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요한을 예수님 앞서 육 개월 전에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그들의 죄를 깨닫게 하고 지적해 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나아와 죄를 회개했습니다. 그러면 그는 그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습니다. 회개는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는 길이요, 천국의 입구입니다. 예수님을 나타내는 ‘소리’!, 우리도 예수님을 세상에 전하고 나타내는 ‘소리’의 사명을 감당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둘째, 나는 물로 세례를 베푸는 자입니다 26절에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라고 했습니다. 그는 회개하는 자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의 세례는 회개의 세례였습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하는 세례입니다. 회개한 증거로 물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막1:8에 보면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면 성령을 받게 됩니다. 성령은 예수님의 영이요, 하나님의 영입니다. 예수님이 붙잡히자 그의 제자들은 모두 도망갔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랬던 그들이 오순절에 성령 세례를 받은 다음에는 담대하게 생명 내놓고 말씀을 전했으며,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로 변화되었습니다. 성령세례는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킵니다. 한국 교회사에 깡패대장 김익두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자 180도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종이 되어서 수많은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했습니다. 요한은 회개를 위한 물세례를 베풀었지만, 예수님은 성령세례를 부어주심으로 근본적으로 새사람, 새로운 성향으로 변화시켜주십니다. 성령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부어져서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시고, 능력으로 역사해 주시며,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를 갖게 하십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진심으로 믿고 회개하는 자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부어 주십니다(행2:38). 셋째, 나는 예수님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치 못할 자입니다 당시는 노예가 있던 시대였는데, 주인의 신발 끈을 풀고 매는 일은 가장 천하고 낮은 계층의 종들이 담당했다고 합니다. 요한은 바로 자신이 예수님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치 못할 자라고 합니다. 그의 겸손한 성품을 알 수 있습니다. 혜성같이 나타난 세례요한을 보고 사람들은 그들이 기다리는 메시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엘리야라고 하기도하고, 모세를 통해 약속하신 그 선지자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당시 세례 요한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으며 유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전혀 자기의 영광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은 사람들이 기다리는 그리스도 즉 메시야가 아니라고 분명히 선포할 뿐만 아니라 자신은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치 못할 천한 자요 낮은 자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조금만 유명해지면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실제 자기 자신보다 자기를 더 높이고자 하는 마음의 유혹을 받습니다. 잠16:18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했으며, 잠18:12에는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고 했습니다. 사6장에 보면 이사야 선지자가 성전에서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고,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했습니다. 그룹천사들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하며 하나님을 경배할 때, 이사야는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자기를 보게 되었습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하며 두려워할 때, 천사가 제단의 핀 숯을 그의 입에 대며 그의 죄와 악을 사해 주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고 선지자의 일을 감당하게 됩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한 번 돌아보고 발견하며, 죄를 회개하고 겸손하여 주님을 증거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삶을 사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4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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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육신이 되어

설교일 : 2021.10.10.주일 성 경 : 요1:1-14 요한복음은 예수님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을 증거하는 네 개의 공관복음서 중 예수님의 말씀들을 길게 기록하고 있는 특징이 있으며, 예수님의 신적인 면 즉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님을 깊이 있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네 개의 생물, 사자, 소, 사람, 독수리를 빗대어 사자와 같이 왕으로서의 예수님을 증거하는 마태복음, 소와 같이 충성된 종으로서의 예수님을 증거하는 마가복음, 사람의 질병과 치료 등 인생의 고통을 많이 만져주시는 인자로서의 예수님을 증거하는 누가복음 등으로 그 특징을 말하는데, 요한복음은 독수리처럼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어 독수리복음이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다른복음서는 예수님의 족보나 출생으로부터 말씀을 시작하고 있으나,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태초부터 말씀으로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1-3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계속 호칭처럼 불려지는 ‘말씀’이란 단어는 바로 예수님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천 년 전에 이스라엘의 작은 동네 베들레헴 마굿간의 말구유에서 사람을 입으시고 태어나셔서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인간으로 오신 예수, 그분은 만물이 창조되기 전에 계신 하나님이시고, 그가 만물을 창조하셨으며, 그가 곧 하나님이심을 밝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구원받아야 할 존재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인간을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을 그저 우리 눈에 보이는 한 인간으로만 본다면 그를 믿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함께 했던 요한은 예수님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주고 밝혀 줌으로서 우리에게 구원의 여망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던 인간이 사단에게 속아 타락하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죄의 종이 되어서 살아가는 인간을 하나님은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죄 없으신 그분이 세상에 친히 사람을 입으시고 오셔서 사람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죄에 빠진 사람들에게 죄를 사함받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 회복되는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구원하실 분은 하나님이셔야 하고, 죄가 없으셔야 했습니다. 동시에 사람이어야만 사람의 죄를 대신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일을 위해 사람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4대 성현 중의 한 사람으로만 본다면, 그저 훌륭하신 한 인간으로만 본다면 어느 누구도 그를 믿어 구원받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우리를 위해 사람이 되셨고, 우리 죄를 위해 죄인으로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으며, 우리를 의롭다하시기 위해 삼일 만에 사망 권세를 깨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 구원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을 때에 그는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으며 어두움에 비친 빛이십니다 4-5절에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생명은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그분 안에 만물의 생명도 있으며, 영적 생명도 있습니다. 그분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생명을 주신 창조자이실 뿐만 아니라, 허물과 죄로 죽은 영혼을 살리시는 영적 생명을 주시는 살리는 영이십니다. 짐승들은 죽으면 없어지고 맙니다. 흙으로만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흙으로 빚으시고 하나님이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살게 하신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영으로서의 영혼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위로 올라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영혼은 불멸하는 존재입니다. 이 영혼은 죄로 인해 죽어 하나님과 단절되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없이 사는 자가 죽은 자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영이 부어지므로 사람이 사람 되었는데, 죄로 말미암아 그 영이 죽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것입니다. 그것이 영적 죽음이요 하나님이 보실 때는 죽음인 것입니다. 이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주로 영접하므로 우리의 죄 문제가 해결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므로 다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듭남’입니다. 거듭난 자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님과 교제하며, 예배하며, 경배하며 사는 복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이생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고 내세에서도 그의 나라인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하며 복락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게 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지만 사람들은 그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영접하는 자 곧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 이름의 권세를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막6:17절에는 믿는 자들에게는 표적이 따르는데,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며, 새방언을 말한다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죄사함을 받고, 의롭다함을 받고, 하늘나라를 기업으로 받게 되며, 거룩하고 영화롭게 됩니다. 벧전2:9에는 하나님의 백성은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거듭난 자는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을 약속받은 자들입니다. 반대로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은 자요, 영생이 없는 자요,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을 자라고 성경은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그분을 구주로 모시고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아멘.
4 months ago
선한교회

사람은 어떻게 창조하셨을까

설교일 : 2021.10.3.주일 성 경 : 창1:26-28, 2:7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6일 동안에 만드셨는데, 사람은 맨 마지막 날인 여섯 째 날에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는 아주 특별하게 만드셨습니다. 다른 생명체들과 전혀 다른 방법으로 만드셨습니다. 오늘은, 처음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어떻게 만드셨을까? 또 사람들은 처음에 지음 받은 그 모습 그대로 지금도 살아가고 있을까?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어떻게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하는 말씀들을 설교하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만드셨습니다 26절과 2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어야겠다고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라고 해서 얼른 생각하면 하나님이 한 분이 아니고 여러분이신가 하고 오해할 수 있는데, 여러분이 아는 대로 하나님은 한 분이 맞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 이십니다. 그러나 이 표현은 하나님이 존재하시고, 또 역사하시는 모습을 그렇게 나타낸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 이렇게 삼위로 존재하시고 역사하신다는 말입니다. 어려운 말입니다. 신학적인 용어로 ‘삼위일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세 위격으로 존재하시고 역사하시는 한 분 하나님이심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26절에서는 ‘우리’라는 장엄형 복수로 쓰고, 27절에서는 ‘자기’라는 단수 형태로 하나님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삼위일체의 진정한 의미와 표현은 인간의 유한한 지혜나 지각으로는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드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형상이나 모양은 하나님이 자신 안에 가지고 계신 성품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내재된 속성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요4:24) 겉으로 볼 수 있는 형태나 모양이 없으십니다. 물론 구약에서 사람이나 천사의 형태로 사람들에게 보이신 것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사람의 수준으로 자신을 나타내신 것입니다(신인동형설). ‘하나님의 형상대로, 모양대로’란 말은 하나님 안에 있는 성품들을 사람 안에 두어서 만드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고 사람이 하나님인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속성들을 닮게 만드신 것이지 하나님과 꼭 같이 만드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성품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사랑, 온유, 거룩함, 의로움, 오래 참음, 영원함, 공의, 정의 등등 아름다운 성품들입니다. 짐승들과 같은 다른 생명체들은 이런 아름다운 성품들이 없습니다. 그냥 본능만 가지고 그 본능대로 살아갑니다. 이런 성품들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과 사랑의 대상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사단에게 속아서 죄를 짓게 되자 이런 아름다운 하나님의 성품들이 약해지기도 하고 변질되기도 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요? 예 죄 때문입니다.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 먹은 불순종의 죄를 지은 이후로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은 죄의 종이 되어서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이렇게 죄는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들을 일그러지게 해서 사람들을 악하고 비참하고 불행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의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셔서 죄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죄 사함 받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대신 죄 값을 치르신 것이지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이제 세상에 있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기만 하면 죄 사함 받고, 예수님을 닮아가므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해 주십니다. 그래서 그는 점점 본래 지음 받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그 성품과 인격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사람, 아름다운 사람, 복된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어 만드셨습니다 2장7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다른 생명체들은 그냥 흙으로 만드셔서 숨 쉬며 살게 하셨는데, 사람은 달랐습니다. 똑같이 흙으로 만드셨지만, 하나님이 친히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셔서 살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생령’이 되었다는 말은 살아있는 생명체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생기’가 무엇이냐 하는 물음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들이 있지만 저는 ‘하나님의 영’을 가리킨다고 확신합니다. 그 이유는 요한복음에 나타나 있는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요20:22에 보면 “..그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고 했는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서 ‘숨을 내쉬며’라는 말씀이 오늘 말씀에 ‘코에 불어넣으시니’하는 말씀과 같은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빚으시고 생기를 코에 불어 넣어 살아있는 존재로 만드신 것처럼, 예수님도 허물과 죄로 죽은 사람들에게(엡2:1)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 다시 살아나게 하십니다 중생하게 하십니다, 거듭나게 하십니다(요3:5,8).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영을 불어 넣어주셔서 살게 하시므로 사람은 하나님과 사귀고, 교통할 수 있는 생명체로 만드신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사귀기도 하고, 교통할 수 있다니, 참으로 놀랍고 감사한 일입니다. 짐승들에게는 그런 특권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존귀하고 또 만물의 영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렇게 존귀하게 만들어진 사람이 마귀에게 속아 죄 가운데 빠지게 되니 하나님을 멀리하고, 싫어하고, 때로는 대적하는 존재로 전락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의 끝은 무엇인가요? 예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 던져지는 종말을 피할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참으로 두렵고 무서운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어김없이 죄인들에게 찾아오셨고,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 예수님을 통해 회복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자들에게는 죄 사함의 은혜를 입혀 주시고, 하나님의 영인 성령을 부어주셔서 다시 살게 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사귀며 교통하며, 동행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신 것입니다. 죄 때문에 일그러지고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도, 생기도 이제 예수님 안에서 다 회복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모셔들이면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셔서, 하나님의 성품들을 다시 회복하고 닮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4 months ago
성동교회(강북)

4월 12일 설교 요약

마음이 청결한 자가 누리는 하나님을 보는 복 (마 5:8)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거룩할지어다”(레11:45)라는 말씀으로 ‘청결’을 명령하셨습니다. 이러한 청결은 단순히 몸을 깨끗이 씻는 ‘몸의 청결’이 아닌 ‘마음의 청결’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본질적으로 마음이 악하고, 또 그 정도가 심하여 하나님의 말씀처럼 스스로 깨끗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저런 명령을 주셨을까요? 하나님께서 마음의 청결을 명령하신 이유는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믿게 하기 위함입니다. 히브리서 9장 14절은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고 말씀합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양심(마음)을 깨끗하게 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삶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뿐 아니라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되어 거룩한 삶까지 살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됨으로 ‘하나님을 보는 복’까지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누리며, 하나님께 의인으로 인정받는다는 의미입니다(시24:3-6). 이것은 우리가 구원받아 누리는 모든 복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은 공회에서 예수님을 증거하며 하나님을 보는 복을 누렸습니다. 이때 스데반은 예수님께서 스데반을 기뻐하시며 보좌에서 일어나신 모습까지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보는 복을 누림으로 예수님의 기쁨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된 우리 또한 하나님을 보는 복을 누리며 예수님의 기쁨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되어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보는 복을 누리는 성도가 됩시다.
5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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