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빛의숲교회

하나님의 선택에 담긴 지혜

[260809 충주빛의숲교회 주일설교 요약] ***하나님의 선택에 담긴 지혜(삼상16:1-23) 유튜브 설교 https://youtu.be/CAsq8etjqt4 본문은 하나님께서 새 왕이 될 사람으로 다윗을 택하시고 그에게 기름을 부으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1절).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베들레헴 이새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는 이새의 장남 엘리압을 보았을 때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라고 생각했습니다(6절).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하셨습니다(7절). 여기서 우리는 아무리 사무엘이라도, 그 역시 인간적인 기준과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을 통해 사무엘의 선입견을 깨뜨리시고 하나님의 선택에 담긴 지혜를 보여 주셨습니다. 1.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십니다. 사무엘이 엘리압을 선택하려 했던 이유는 사울이 왕으로 선택되었을 때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사울은 준수한 외모를 가졌고 다른 사람보다 어깨 위가 더 클 만큼 키가 컸습니다(9:2). 사무엘은 이미 경험했던 왕의 모습을 기준으로 새로운 왕을 판단하려 했던 것입니다. 사람은 자연스럽게 외적인 조건을 봅니다. 외모와 직업, 학력과 재산, 사는 집과 자동차, 사회적인 지위 등을 가지고 사람을 평가합니다. 그러나 외적인 조건이 그 사람의 됨됨이나 인격을 모두 설명해 주지는 못합니다. 또한 사무엘이 선택받은 사람을 찾지 못했던 데에는 서열에 대한 생각도 있었습니다. 이새는 장남부터 일곱 아들을 차례로 사무엘 앞에 세웠지만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은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모두가 관심을 두지 않았던 막내 다윗이 들에서 양을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의 관습과 기준에서는 장남이 중요하고 막내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선택은 사람의 서열과 달랐습니다. 이것은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 장로, 권사, 집사의 직분은 특권이나 벼슬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고 더 많이 헌신하라고 주신 자리입니다. 세상에서는 지위가 높아질수록 더 많은 권리와 혜택을 누리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더 많은 직분을 맡을수록 더 큰 책임과 섬김을 감당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지위에 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인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보시는 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중심을 가지고 살아가느냐 하는 것임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작은 일에도 충성스러운 사람, 성실한 사람을 선택하십니다. 이새의 일곱 아들을 모두 살펴본 후에도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이 나타나지 않자, 사무엘은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새는 “막내가 아직 남아 있는데 들에서 양을 지키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사무엘이 그를 데려오게 하자 하나님께서는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다윗은 아버지와 형제들에게도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이 찾아왔을 때에도 제사에 참석하지 못하고 들에서 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들판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양 떼를 성실하게 돌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모습을 보고 계셨습니다. 12절에 다윗의 외모가 아름답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를 기준으로 다윗을 선택하셨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윗이 선택받은 이유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순전한 마음, 그리고 맡겨진 일에 대한 성실함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이 양을 치던 시간은 결코 의미 없는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시편 78편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기르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아버지의 양무리를 성실하게 돌보던 경험은 훗날 이스라엘 백성을 돌보는 왕으로서의 준비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작은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사람을 통해 더 큰 일을 이루십니다. 모세도 광야에서 보낸 40년 동안 목동으로 성실하게 살았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요셉 역시 노예생활과 감옥생활 가운데서도 성실함을 인정받았고 마침내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다윗 역시 왕이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양을 친 것이 아니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들판에서 맡겨진 양떼를 성실하게 돌보았을 뿐입니다. 우리도 오늘 내가 서 있는 자리가 크고 화려한 자리인가 보다, 그 자리에서 얼마나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3. 하나님은 선택하신 사람에게 성령을 주셔서 사명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붓자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고 말씀합니다(13절). 이것은 하나님께서 앞으로 왕으로 살아갈 다윗에게 사명을 감당할 능력을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을 보면 모세를 부르실 때에도 능력을 주셨고, 사사들을 세우실 때에도 하나님의 영을 부어 주셨습니다. 초대교회 역시 성령이 임하신 후에 복음을 담대하게 전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 역시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셨기에 골리앗 앞에서 담대할 수 있었고 수많은 위기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특히 14절은 다윗과 사울을 대조해서 보여 줍니다. 다윗에게는 하나님의 영이 임했지만 사울에게서는 하나님의 영이 떠났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사울이 여전히 왕궁에 있고 왕좌에 앉아 있는 왕이었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이미 다윗이 준비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기름 부음을 받은 즉시 왕위에 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사울의 왕궁으로 들어가 수금을 타며 사울을 섬겼습니다(15-23절). 하나님은 다윗이 왕이 되기 전에 먼저 왕궁을 배우게 하시고, 지도자가 되기 전에 먼저 섬기는 사람으로 훈련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특권이 아니라 사명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선택하신 사람에게 사명만 맡기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주셔서 그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관심은 “내가 얼마나 능력이 있는가?”가 아니라 “나는 하나님의 영을 의지하고 있는가?”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함께하실 때 우리는 어떤 자리에서도 충성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삶을 끝까지 완성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택에 담긴 지혜입니다.
4주 전
독산동 대광교회

거짓된 동정을 넘어, 지혜로운 동행으로 (오훈 목사)

어느 날 전화 한 통이 걸려옵니다. "장애인 자립을 도와달라"며 거절하기 힘든 동정심을 자극하고, 교회의 선의와 목회적 양심을 이용해 물품을 보냅니다. 상자를 열어보면 시중가 수천 원에 불과한 비누 몇 개가 들어있지만, 정작 요구하는 대금은 10만 원이 훌쩍 넘는 폭리입니다. 당황하여 거절하거나 문제를 지적하면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 말합니다. "장애인을 외면하십니까?", "하나님보다 사람이 더 무섭습니다." 거룩한 언어와 피해자 행세로 상대에게 영적·심리적 죄책감을 뒤집어씌우는 전형적인 '가스라이팅'입니다.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정상적이고 공신력 있는 장애인 복지 단체나 공공기관은 절대로 전화로 생필품을 강매하거나 성금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이들의 정체는 복지 단체의 이름을 무단 사칭하거나 명의만 빌려 폭리를 취하는 불법 유통 업체입니다. 이들이 저지르는 가장 심각한 범죄는 단지 얼마간의 돈을 갈취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이들의 진짜 악함은 불우한 이웃을 도우려는 성도들의 순수한 선의를 짓밟고, 장애인을 '동냥과 시혜의 대상'이자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킨다는 점 입니다. 이 불법 행위에 돈을 보내는 것은 장애인을 돕는 일이 아니며, 오히려 이웃의 선한 마음을 악용하는 범죄 집단의 배를 배부르게 하는 일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마태복음 10:16) 불법과 위선에 대해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은 사랑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거짓에 속지 않고 교회를 지키며, 참된 진리를 수호하는 영적 분별력 입니다. 혹여 이러한 전화를 받으시더라도 미안함이나 죄책감을 느끼실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구매 의사가 없음을 단호히 밝히시고, 불법적인 강매와 독촉에는 경찰(112)이나 소비자원 등 공의의 법조치를 통해 대처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우리는 던져야 할 본질적인 질문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도와 교회가 걸어가야 할 진짜 장애인 복지와 긍휼의 길은 무엇인가?" 진짜 장애인을 위하는 길은 '쉬운 동정심'으로 길거리의 거인에게 동전 몇 푼을 던져주는 시혜가 아닙니다. 동정이 아닌 '동행'입니다. 장애인을 불쌍해서 도와주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주 안에서 함께 예배하고 삶을 나누는 동등한 인격적 지체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시혜가 아닌 '자립'입니다. 일회성 성금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정직하게 땀 흘려 만든 물품을 제값에 사주는 것입니다. 정직하게 운영되는 장애인 보호작업장이나 사회적 기업의 제품을 구매함으로써 그들의 노동의 가치와 자존감을 세워주어야 합니다. 문턱을 낮추는 '사랑의 실천'입니다. 마음의 문턱을 낮추어 장애가 있는 이웃이 아무런 불편 없이 주님의 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환경을 가꾸는 것입니다. 악한 상술로 교회를 흔드는 거짓된 동정의 손길은 단호히 물리칩시다. 그리고 그 자리에 정직과 공의, 그리고 깊은 인격적 동행이 있는 '진짜 사랑'을 채워갑시다. 속지 않는 지혜와 타협하지 않는 순결함으로 세상의 정직한 빛과 소금이 되는 대광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4주 전
충주빛의숲교회

명목상의 신앙을 넘어 참된 순종으로

본문에는 사울 왕이 하나님께 버림받게 되는 결정적인 사건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명령하셨고 사울은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온전히 따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11절)라고 말씀하시며 그를 폐위시키셨습니다. 후회하셨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판단을 잘못하셨다는 뜻이 아니라, 사울의 불순종을 안타까워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말씀에는 순종하지 못했던 명목상의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명목상의 신앙을 넘어 참된 순종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1. 내 생각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우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아말렉을 남김없이 진멸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3절). 이는 갑작스러운 명령이 아니라 출애굽 이후 약 400년 동안 회개의 기회를 주신 뒤 내리신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었습니다. '진멸'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헤렘'인데, 하나님께 완전히 바쳐진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사울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그 어떤 것도 남겨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판단을 앞세웠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드리겠다는 명목으로 좋은 소와 양을 남겨놓은 것입니다(9절). 그는 "순종했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자기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 위에 두고 있었습니다(15절). 우리도 순종하지 못할 때마다 나름의 이유와 핑계를 찾습니다. "부득이했습니다" "저로선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런 변명이 통하지 않습니다.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을 내 생각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에 맞추는 것입니다. 사울은 결국 자기 생각을 앞세운 결과 교만에 빠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셨는데도 자신을 위해 기념비를 세웠습니다(12절). 말씀보다 자신을 신뢰하는 사람은 결국 자기 영광을 추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선택하거나 판단하는 대상이 아니라 믿음으로 순종해야 할 기준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생각과 계산을 말씀 아래 내려놓고 말씀이 말씀되게 하며 살아가길 바랍니다. 2. 세상의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사울은 전쟁 중에도 하나님의 명령보다 좋은 소와 양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죽이기 아까운 겁니다. 결국 들을 것을 듣지 못했고, 순종해야 할 말씀에도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을 빼앗기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공부하는 사람이 다른 것에 정신을 빼앗기면 공부를 못하고, 일하는 사람이 다른 곳에 마음을 두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한신교회 이중표 목사님은 평생 유학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품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하버드대학교 채플에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나도 이 대학 못 나왔다"라는 마음을 주셨고, 그 순간 자신의 마음이 학위와 명예에 빼앗겨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세상에 마음을 빼앗겼다면 다시 하나님께 돌이켜야 합니다. 예수님께 마음을 집중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하나님께 쓰임받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3. 겸손으로 순종하면 끝까지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22절,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순종이라는 히브리어 '샤마'는 '듣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듣고 그대로 행하는 것이 참된 순종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보다 하나님을 설득하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말씀 앞에서 순종하기보다 계산하고 변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겸손했습니다. 겸손은 자신을 작게 여기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오늘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순종할 수 있는 믿음과 힘을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의 힘만으로는 끝까지 순종할 수 없습니다. 사울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 역시 말씀보다 자기 생각을 앞세울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소망이 없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울과 달리 끝까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겟세마네에서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시며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우리의 불순종을 대신 담당하시고 완전한 순종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참된 순종의 전형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을 찾지 않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붙들고 참된 순종을 결단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성령께서는 그런 사람에게 새 마음을 주시고 순종할 힘을 더해 주십니다. 이제 우리는 명목상의 신앙을 벗어나야 합니다. 참으로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씀에 기쁨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감으로 끝까지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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