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은사랑교회

0705 주일설교 요약

설교제목 : 푯대를 향하여 설교본문 : 고전 1:1~9 사도바울은 이 짧은 9개의 문장에서 예수 또는 그리스도라는 표현을 8~9번 반복합니다. 사도바울은 교회 개척이나, 선교가 아니라 온통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개척의 이유는 성도를 모으고 교회의 크기를 키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저 자신이 이런 저런 사역을 하다가 예수님을 놓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으로 충만하고 싶어서입니다. 또한 사도바울은 4~8절에서 그리스도인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그리스도께 고정시킵니다. 과거에 아무리 뜨거웠어도 현재 충만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놓치면 언제든 변질되기 마련인게 사람입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서 3장 12~14절에서 이전 일은 잊어버리고 푯대를 향하여 나간다고 말씀합니다. 과거를 들먹이며 자신의 지분을 주장하는 어떤 목회자와 같지 않고 앞에 계신 부름의 상을 향해 달려간다고 합니다. 예은사랑교회와 제가, 그리고 저희 가정이 처음의 마음을 잊어버리지 않고, 끝까지 앞을 보고 달려갔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생각해보면 단순히 분쟁의 문제가 아니라, 고린도지역의 세속적 문화의 영향을 받은 지도자 추종이 문제였습니다. 복음이 세상과 섞이면 이상한 괴물이 탄생합니다. 한국 땅에 있는 교회의 문제들도 복음이 세상의 가치관과 섞여서 그런 것입니다. 바울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예수그리스도로 충만하고, 끝까지 그분만을 바라보되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을 바라봐야 합니다. 예은사랑교회가 그리고 이 땅의 성도들이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되 부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분을 바라보길 축복합니다.
지난달
성동교회(강북)

7월 19일 설교 요약

칭의, 양자(갈 3:24-26) 소명과 중생을 통해 믿고 회개한 자는 하나님께 칭의와 양자의 은혜를 받습니다. 1. 칭의 칭의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인’으로 여겨주시는 은혜입니다. 여기서 의인으로 여겨주신다는 것은 우리가 진짜로 죄 없는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의인으로 여겨주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우리의 ‘대속물’로 삼으셔서 십자가 죽음을 통해 우리를 죄로 인한 모든 형벌과 책임으로부터 해방하셨습니다.(마20:28) 그러므로 우리는 비록 죄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 ‘의인’이라 칭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칭의를 받음으로 여러 유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최후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고(마13:43), 정죄 당하지 않으며(롬8:33),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자격을 얻습니다.(히9:14) 2. 양자 양자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인으로 여기실 뿐 아니라 자녀까지 삼아주시는 은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근거는 하나님의 사랑인데, 우리는 양자됨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빌1:4-5) 우리는 하나님의 양자가 됨으로 인해 하나님을 무서워하지 않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녀의 삶을 살게 되었으며(롬8:15),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성령님을 따라 사는 능력을 공급받게 되었고(눅11:13), 때때로 우리가 엇나갈 때마다 필요한 징계까지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히12:7) 우리는 이러한 완전한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지난달
성동교회(강북)

7월 12일 설교 요약

믿음, 회개(막 1:15) 성령님을 통해 ‘소명’, ‘중생’이 이루어진 자는 그 반응으로 ‘믿음’, ‘회개’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1. 믿음 믿음이란 올바른 믿음의 대상이신 예수님을 믿는 행위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며, 죽음에서 부활하신 우리의 구원자로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롬10:9) 믿음에는 반드시 ‘지식’, ‘동의’, ‘신뢰’라는 세 가지 요소가 포함되어 있어야 합니다. ‘지식’이란 예수님에 관한 올바른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며, ‘동의’란 습득한 지식을 진리로 인정하는 것이며, ‘신뢰’란 구원자이신 예수님께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식’, ‘동의’, ‘신뢰’의 믿음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을 의지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위해 살아가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2. 회개 회개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죄를 후회하며 죄에서 돌이키는 모습을 의미합니다.(욥42:6, 행3:19) 즉 ‘죄를 향하던 삶의 방향’을 ‘하나님을 향하는 삶의 방향’으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회개는 ‘단회적 회개’와 ‘반복적 회개’로 나눌 수 있습니다. ‘단회적 회개’란 ‘구원받는 회개’로 위에서 살펴본 ‘삶의 방향을 죄에서 하나님으로 돌이키는 회개’입니다. 이러한 회개는 완료된 회개이며, 다시 반복하지 않습니다. ‘반복적 회개’는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하는 회개로 구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기 위한 회개입니다.(벧전2:11) 이러한 ‘반복적 회개’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며, 구원받은 자로서 합당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지난달
충주빛의숲교회

상황입니까? 하나님입니까?

사울이 왕이 된 지 2년 되었을 때 3,000명의 상비군을 조직했습니다. 그런데 요나단이 게바의 블레셋 수비대를 공격하자 블레셋은 병거 3만, 마병 6천, 보병이 해변의 모래처럼 많은 대군을 이끌고 올라왔습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워 굴과 바위틈에 숨거나 요단강을 건너 도망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전쟁은 언제나 군사의 숫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셨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었습니다. 비록 현실은 불리했지만 하나님을 바라보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하나님보다 상황을 더 크게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당신은 무엇을 더 크게 보고 있는가? 상황입니까? 하나님입니까?" 1. 상황보다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블레셋과 비교하면 이스라엘은 군사도 적고 무기도 부족했습니다. 그들이 승리할 길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와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이 정한 기한이 다 되어가도록 오지 않자 백성들은 계속 흩어졌고, 사울은 조급해져 자신이 직접 번제를 드렸습니다. 여기서 사울은 세 가지 잘못을 범했습니다. 1) 하나님보다 사람을 붙잡기 위한 수단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야 할 제사가 백성들의 마음을 붙드는 도구가 되고 말았습니다. 2) 제사장의 권한을 침범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의 질서를 세우셨는데 사울은 자신의 위치를 넘어섰습니다. 3) 하나님의 때를 끝까지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렸다면 사무엘이 도착했지만 그는 조급함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의 책망을 들었지만 잘못을 회개하기는커녕, 사무엘과 백성과 블레셋, 심지어 하나님까지 탓하며 변명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변명을 받지 않으셨고 결국 왕권까지 빼앗기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라는 변명을 자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변명이 아니라 회개입니다. 실수했을 때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를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2. 상황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해야 합니다. 이 사건의 핵심은 번제를 드린 행위 자체보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와 질서를 무시한 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제아무리 왕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 아래 있도록 하셨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판단보다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사무엘의 인도를 따라야 했습니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판단을 앞세웠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절차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불순종이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를 거역하는 것을 매우 엄중하게 다룹니다. 미리암이 모세의 권위에 도전했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오늘날도 권위와 질서가 무너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도 순종할 수 없습니다.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서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존중하며 자신의 판단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3. 상황보다 하나님의 능력을 더 크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울은 "내가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 속에는 두려움과 불안이 가득했습니다. 블레셋은 병거 3만과 수많은 군사를 보유했지만, 이스라엘은 겨우 600명만 남았고 사울과 요나단 외에는 칼과 창조차 없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습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이런 상황을 만납니다. 방법도 없고 희망도 보이지 않는 현실 앞에서 불안해집니다. 그러나 사울은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자기 방법을 선택했고, 요나단은 하나님을 선택했습니다. 삼상 14장에서 요나단은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다"라고 고백하며 믿음으로 나아갔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통해 이스라엘에 승리를 주셨습니다. 사울과 요나단은 같은 상황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상황을 크게 보았고, 요나단은 하나님을 크게 보았습니다. 두 사람의 차이는 환경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었습니다. 우리도 위기의 순간을 만날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물으십니다. "너는 누구를 더 크게 보고 있느냐? 상황이냐? 하나님이냐?" 불안한 현실보다 능력의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을 더 크게 바라보는 사람은 상황에 지배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단에게 승리를 주셨던 것처럼 하나님을 더 크게 바라보는 우리에게도 믿음의 승리를 허락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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