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교회

세례 요한의 자기증거  

설교일 : 2021.10.17.주일 성 경 : 요1:19-28 구약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 만에 광야에 등장한 세례요한, 그는 자기를 증거하고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그는 자기를 바로 알고 자기의 사명을 바로 깨달은 자입니다. 자기를 바로 아는 일이 우리의 인생에서 참으로 중요합니다. 나는 어디로부터 와서, 무엇을 위해 살다가,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모든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다가, 마지막에 하나님 앞에 서야 할 존재로 지음 받았습니다. 히9:27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칼빈은 기독교강요 제1권에서 바르고 견고한 지혜는 두 지식으로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참되고 건전한 지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인간을 아는 지식이다...하나님을 먼저 묵상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한 분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존재하기 때문이다...인간은 먼저 하나님의 얼굴을 묵상하지 않고서는 인간에 대한 참된 지식을 얻을 수 없다. 자신의 부패를 인정하기 전에는 항상 자기 의가 나타나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본문은 세례요한의 자기증거 세 가지를 말씀합니다. 첫째,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입니다 23절에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그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고 합니다. ‘소리’는 생각이나 의미를 남기고는 사라지는 존재입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소리를 내면 ‘사랑한다’는 의미만 남기고 ‘소리’는 없어지는 것입니다. 소금이 짠 맛을 내고는 녹아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이 세상에 나타내고 자기는 없어지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 자신과 사명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는 ‘주의 길을 곧게 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앞으로 오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고 준비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준비합니까? 말라기 선지자 이후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므로 사람들은 어두움과 죄악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지만, 그들의 상태는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할 상태가 되어있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상태 특히 마음 상태를 앞서 준비시키는 일을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요한을 예수님 앞서 육 개월 전에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그들의 죄를 깨닫게 하고 지적해 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나아와 죄를 회개했습니다. 그러면 그는 그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습니다. 회개는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는 길이요, 천국의 입구입니다. 예수님을 나타내는 ‘소리’!, 우리도 예수님을 세상에 전하고 나타내는 ‘소리’의 사명을 감당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둘째, 나는 물로 세례를 베푸는 자입니다 26절에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라고 했습니다. 그는 회개하는 자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의 세례는 회개의 세례였습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하는 세례입니다. 회개한 증거로 물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막1:8에 보면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면 성령을 받게 됩니다. 성령은 예수님의 영이요, 하나님의 영입니다. 예수님이 붙잡히자 그의 제자들은 모두 도망갔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랬던 그들이 오순절에 성령 세례를 받은 다음에는 담대하게 생명 내놓고 말씀을 전했으며,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로 변화되었습니다. 성령세례는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킵니다. 한국 교회사에 깡패대장 김익두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자 180도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종이 되어서 수많은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했습니다. 요한은 회개를 위한 물세례를 베풀었지만, 예수님은 성령세례를 부어주심으로 근본적으로 새사람, 새로운 성향으로 변화시켜주십니다. 성령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부어져서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시고, 능력으로 역사해 주시며,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를 갖게 하십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진심으로 믿고 회개하는 자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부어 주십니다(행2:38). 셋째, 나는 예수님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치 못할 자입니다 당시는 노예가 있던 시대였는데, 주인의 신발 끈을 풀고 매는 일은 가장 천하고 낮은 계층의 종들이 담당했다고 합니다. 요한은 바로 자신이 예수님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치 못할 자라고 합니다. 그의 겸손한 성품을 알 수 있습니다. 혜성같이 나타난 세례요한을 보고 사람들은 그들이 기다리는 메시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엘리야라고 하기도하고, 모세를 통해 약속하신 그 선지자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당시 세례 요한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으며 유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전혀 자기의 영광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은 사람들이 기다리는 그리스도 즉 메시야가 아니라고 분명히 선포할 뿐만 아니라 자신은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치 못할 천한 자요 낮은 자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조금만 유명해지면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실제 자기 자신보다 자기를 더 높이고자 하는 마음의 유혹을 받습니다. 잠16:18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했으며, 잠18:12에는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고 했습니다. 사6장에 보면 이사야 선지자가 성전에서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고,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했습니다. 그룹천사들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하며 하나님을 경배할 때, 이사야는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자기를 보게 되었습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하며 두려워할 때, 천사가 제단의 핀 숯을 그의 입에 대며 그의 죄와 악을 사해 주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고 선지자의 일을 감당하게 됩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한 번 돌아보고 발견하며, 죄를 회개하고 겸손하여 주님을 증거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삶을 사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6개월 전
선한교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설교일 : 2021.10.10.주일 성 경 : 요1:1-14 요한복음은 예수님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을 증거하는 네 개의 공관복음서 중 예수님의 말씀들을 길게 기록하고 있는 특징이 있으며, 예수님의 신적인 면 즉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님을 깊이 있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네 개의 생물, 사자, 소, 사람, 독수리를 빗대어 사자와 같이 왕으로서의 예수님을 증거하는 마태복음, 소와 같이 충성된 종으로서의 예수님을 증거하는 마가복음, 사람의 질병과 치료 등 인생의 고통을 많이 만져주시는 인자로서의 예수님을 증거하는 누가복음 등으로 그 특징을 말하는데, 요한복음은 독수리처럼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어 독수리복음이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다른복음서는 예수님의 족보나 출생으로부터 말씀을 시작하고 있으나,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태초부터 말씀으로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1-3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계속 호칭처럼 불려지는 ‘말씀’이란 단어는 바로 예수님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천 년 전에 이스라엘의 작은 동네 베들레헴 마굿간의 말구유에서 사람을 입으시고 태어나셔서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인간으로 오신 예수, 그분은 만물이 창조되기 전에 계신 하나님이시고, 그가 만물을 창조하셨으며, 그가 곧 하나님이심을 밝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구원받아야 할 존재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인간을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을 그저 우리 눈에 보이는 한 인간으로만 본다면 그를 믿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함께 했던 요한은 예수님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주고 밝혀 줌으로서 우리에게 구원의 여망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던 인간이 사단에게 속아 타락하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죄의 종이 되어서 살아가는 인간을 하나님은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죄 없으신 그분이 세상에 친히 사람을 입으시고 오셔서 사람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죄에 빠진 사람들에게 죄를 사함받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 회복되는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구원하실 분은 하나님이셔야 하고, 죄가 없으셔야 했습니다. 동시에 사람이어야만 사람의 죄를 대신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일을 위해 사람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4대 성현 중의 한 사람으로만 본다면, 그저 훌륭하신 한 인간으로만 본다면 어느 누구도 그를 믿어 구원받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우리를 위해 사람이 되셨고, 우리 죄를 위해 죄인으로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으며, 우리를 의롭다하시기 위해 삼일 만에 사망 권세를 깨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 구원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을 때에 그는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으며 어두움에 비친 빛이십니다 4-5절에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생명은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그분 안에 만물의 생명도 있으며, 영적 생명도 있습니다. 그분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생명을 주신 창조자이실 뿐만 아니라, 허물과 죄로 죽은 영혼을 살리시는 영적 생명을 주시는 살리는 영이십니다. 짐승들은 죽으면 없어지고 맙니다. 흙으로만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흙으로 빚으시고 하나님이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살게 하신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영으로서의 영혼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위로 올라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영혼은 불멸하는 존재입니다. 이 영혼은 죄로 인해 죽어 하나님과 단절되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없이 사는 자가 죽은 자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영이 부어지므로 사람이 사람 되었는데, 죄로 말미암아 그 영이 죽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것입니다. 그것이 영적 죽음이요 하나님이 보실 때는 죽음인 것입니다. 이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주로 영접하므로 우리의 죄 문제가 해결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므로 다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듭남’입니다. 거듭난 자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님과 교제하며, 예배하며, 경배하며 사는 복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이생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고 내세에서도 그의 나라인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하며 복락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게 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지만 사람들은 그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영접하는 자 곧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 이름의 권세를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막6:17절에는 믿는 자들에게는 표적이 따르는데,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며, 새방언을 말한다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죄사함을 받고, 의롭다함을 받고, 하늘나라를 기업으로 받게 되며, 거룩하고 영화롭게 됩니다. 벧전2:9에는 하나님의 백성은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거듭난 자는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을 약속받은 자들입니다. 반대로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은 자요, 영생이 없는 자요,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을 자라고 성경은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그분을 구주로 모시고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아멘.
6개월 전
선한교회

사람은 어떻게 창조하셨을까

설교일 : 2021.10.3.주일 성 경 : 창1:26-28, 2:7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6일 동안에 만드셨는데, 사람은 맨 마지막 날인 여섯 째 날에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는 아주 특별하게 만드셨습니다. 다른 생명체들과 전혀 다른 방법으로 만드셨습니다. 오늘은, 처음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어떻게 만드셨을까? 또 사람들은 처음에 지음 받은 그 모습 그대로 지금도 살아가고 있을까?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어떻게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하는 말씀들을 설교하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만드셨습니다 26절과 2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어야겠다고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라고 해서 얼른 생각하면 하나님이 한 분이 아니고 여러분이신가 하고 오해할 수 있는데, 여러분이 아는 대로 하나님은 한 분이 맞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 이십니다. 그러나 이 표현은 하나님이 존재하시고, 또 역사하시는 모습을 그렇게 나타낸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 이렇게 삼위로 존재하시고 역사하신다는 말입니다. 어려운 말입니다. 신학적인 용어로 ‘삼위일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세 위격으로 존재하시고 역사하시는 한 분 하나님이심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26절에서는 ‘우리’라는 장엄형 복수로 쓰고, 27절에서는 ‘자기’라는 단수 형태로 하나님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삼위일체의 진정한 의미와 표현은 인간의 유한한 지혜나 지각으로는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드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형상이나 모양은 하나님이 자신 안에 가지고 계신 성품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내재된 속성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요4:24) 겉으로 볼 수 있는 형태나 모양이 없으십니다. 물론 구약에서 사람이나 천사의 형태로 사람들에게 보이신 것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사람의 수준으로 자신을 나타내신 것입니다(신인동형설). ‘하나님의 형상대로, 모양대로’란 말은 하나님 안에 있는 성품들을 사람 안에 두어서 만드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고 사람이 하나님인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속성들을 닮게 만드신 것이지 하나님과 꼭 같이 만드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성품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사랑, 온유, 거룩함, 의로움, 오래 참음, 영원함, 공의, 정의 등등 아름다운 성품들입니다. 짐승들과 같은 다른 생명체들은 이런 아름다운 성품들이 없습니다. 그냥 본능만 가지고 그 본능대로 살아갑니다. 이런 성품들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과 사랑의 대상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사단에게 속아서 죄를 짓게 되자 이런 아름다운 하나님의 성품들이 약해지기도 하고 변질되기도 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요? 예 죄 때문입니다.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 먹은 불순종의 죄를 지은 이후로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은 죄의 종이 되어서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이렇게 죄는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들을 일그러지게 해서 사람들을 악하고 비참하고 불행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의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셔서 죄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죄 사함 받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대신 죄 값을 치르신 것이지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이제 세상에 있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기만 하면 죄 사함 받고, 예수님을 닮아가므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해 주십니다. 그래서 그는 점점 본래 지음 받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그 성품과 인격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사람, 아름다운 사람, 복된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어 만드셨습니다 2장7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다른 생명체들은 그냥 흙으로 만드셔서 숨 쉬며 살게 하셨는데, 사람은 달랐습니다. 똑같이 흙으로 만드셨지만, 하나님이 친히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셔서 살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생령’이 되었다는 말은 살아있는 생명체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생기’가 무엇이냐 하는 물음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들이 있지만 저는 ‘하나님의 영’을 가리킨다고 확신합니다. 그 이유는 요한복음에 나타나 있는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요20:22에 보면 “..그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고 했는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서 ‘숨을 내쉬며’라는 말씀이 오늘 말씀에 ‘코에 불어넣으시니’하는 말씀과 같은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빚으시고 생기를 코에 불어 넣어 살아있는 존재로 만드신 것처럼, 예수님도 허물과 죄로 죽은 사람들에게(엡2:1)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 다시 살아나게 하십니다 중생하게 하십니다, 거듭나게 하십니다(요3:5,8).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영을 불어 넣어주셔서 살게 하시므로 사람은 하나님과 사귀고, 교통할 수 있는 생명체로 만드신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사귀기도 하고, 교통할 수 있다니, 참으로 놀랍고 감사한 일입니다. 짐승들에게는 그런 특권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존귀하고 또 만물의 영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렇게 존귀하게 만들어진 사람이 마귀에게 속아 죄 가운데 빠지게 되니 하나님을 멀리하고, 싫어하고, 때로는 대적하는 존재로 전락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의 끝은 무엇인가요? 예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 던져지는 종말을 피할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참으로 두렵고 무서운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어김없이 죄인들에게 찾아오셨고,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 예수님을 통해 회복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자들에게는 죄 사함의 은혜를 입혀 주시고, 하나님의 영인 성령을 부어주셔서 다시 살게 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사귀며 교통하며, 동행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신 것입니다. 죄 때문에 일그러지고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도, 생기도 이제 예수님 안에서 다 회복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모셔들이면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셔서, 하나님의 성품들을 다시 회복하고 닮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6개월 전
성동교회(강북)

4월 12일 설교 요약

마음이 청결한 자가 누리는 하나님을 보는 복 (마 5:8)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거룩할지어다”(레11:45)라는 말씀으로 ‘청결’을 명령하셨습니다. 이러한 청결은 단순히 몸을 깨끗이 씻는 ‘몸의 청결’이 아닌 ‘마음의 청결’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본질적으로 마음이 악하고, 또 그 정도가 심하여 하나님의 말씀처럼 스스로 깨끗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저런 명령을 주셨을까요? 하나님께서 마음의 청결을 명령하신 이유는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믿게 하기 위함입니다. 히브리서 9장 14절은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고 말씀합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양심(마음)을 깨끗하게 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삶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뿐 아니라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되어 거룩한 삶까지 살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됨으로 ‘하나님을 보는 복’까지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누리며, 하나님께 의인으로 인정받는다는 의미입니다(시24:3-6). 이것은 우리가 구원받아 누리는 모든 복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은 공회에서 예수님을 증거하며 하나님을 보는 복을 누렸습니다. 이때 스데반은 예수님께서 스데반을 기뻐하시며 보좌에서 일어나신 모습까지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보는 복을 누림으로 예수님의 기쁨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된 우리 또한 하나님을 보는 복을 누리며 예수님의 기쁨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되어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보는 복을 누리는 성도가 됩시다.
6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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